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April, 2015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고뇌하는 당신을 위해
Editor. 지은경
암담하고 부조리하고 험한 세상을 살며우리는 무감각해지고 무지해지고 급기야 진실을 외면하고 점점 모순으로 가득차는 자기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병든 사회는 인간을 또한 병들게 하고 결국은 진실이 거짓이 되고 무엇이든 시끄럽고 강한 것이 선한 것이 되고 만다. 그렇다면 과거의 불안했던 시기를 지내온 작가들은 이러한 사회를 어떻게 지나왔을까? 그들은 당시 사회의 부조리함과 극악무도한 사상의 무게를 어떤 방식으로극복하고 표현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낼수 있었던 것일까? 또 그런 혼란한 배경 속에서 어떻게 무게중심을 잃지 않고 삶을 지탱할 수 있었을까? 가끔은 그런 지성인들의 초연함의 필체가 필요한 때가 있다.
르네상스 인문주의 도달점이자 모럴리스트 문학의 출발점을 찍은 프랑스의 철학자, 사상가 몽테뉴. 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의 저서인 『수상록』은 많은 작가들의 주제였으며 오늘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삶의 지침서 같은역할을 하는 책이다. 전 3권으로 이루어진 수상록은 우리나라에 한 권으로 완역되어 소개되고 있다. 수상록은 ‘나’를 통해 보편적 인간에 이르고자 노력하며 인생에서 만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격언과 일화 그리고 시와 유머, 역설을 통해 고찰하려 한다. 또한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한 고백들이 진솔하게 이어져 읽는 내내 즐거움과 위안을 얻을 수 있다. 그는 500년 전에 이미 다른 사람을 어떻게 포용해야 할지, 다르다는 것의 가치와 다양함에 대한 존중 등을 읊고 있다. 시대적 배경과 종교관의 변화, 세대의 변화들로 인해 지금 읽기에는 어딘지 거북한 파스칼의 『팡세』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몽테뉴는 오늘날의 사람들보다 더욱 앞선, 어쩌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상의 진리와 지혜를 이미 다 지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멋진 생각들을 우리 앞에 툭툭 던진다. 그는 책에서 이와 같이 말했다. “내가 그리고자 하는 것은 나의 행위가 아니고 나의 본질이다.” 개인과 사회의 관계, 토론과 진행방법, 신앙과 과학, 어린이 교육, 남녀평등과 성의 문제, 문명과 자연, 전쟁, 식민정책의 비리 등 인류의 거의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이 책은 마침 종교전쟁으로 얼룩져 프랑스 역사상 가장 험악한 시기라고 여겨지는 1588년에 쓴 작품이다. 그는 선입견을 물리치고 객관적인 견지에서 진실을 발견하도록 해 독자 스스로가 검증과 탐색의 길로 들어서도록 이끈다. 경험을 존중하며 인간과 세계에 관해 실증적으로 사색하게 하는 몽테뉴는 지식에 의해서 변질된 인간성보다는 본성대로의 인간성을높이 평가했다. 그의 이러한 사색은 지금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그는 인간의 가장 높은 지혜와 행복은 남과 자신에 대한 의무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사생활이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며, 자신의 타고난 조건에 순응하여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준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성찰과 자제를 통하여 정신적 독립을 얻을 수 있으며,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신이므로 항상 자신의 심판관이 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나는 나를 심판하는 나 자신의 법률과 법정을 갖고 있다. 나는 어느 곳보다도 자주 그 법정에 출두한다.” 결국 몽테뉴는 인간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었다. 인간 이상의 존재가 되려고 애쓰는 것은 위험한 유혹이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자기 개선의 전제 조건이다. 몽테뉴는 질병을 통해 고통을 쾌락과 서로 의존하는 관계로 받아들이고 고통과 쾌락을 조화시키는 법을 배웠고, “신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기뻐하셨듯이 나는 삶을 사랑하고 삶을 즐긴다”고 말한다.
200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도리스 레싱은 20세기에 영어로 소설을 쓰도록 선택받은 몇 안 되는 흥미진진한지성인 중 하나라는 평과 함께 영국 문학의 중심에 서 있는작가이기도 하다. 1919년 이란에서 출생한 그녀는 아프리카로 이주, 1949년 런던에 정착하기 전까지 로디지아에서 지냈다. 작가의 자전적 소설인 『생존자의 회고록』은 1975년에 발표한 소설로 정신분열과 사회적 붕괴라는 주제를 다룬 SF 판타지물이다. 온 인류가 미래에 대한 꿈에 부풀어 있을 때, 물질 문명의 종말과 붕괴되는 사회 속에서 분열되고 쇠약해져 가는 무기력한 인간의 모습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영국 어느 소도시에 사는 주인공은 가끔 실재와 허구를 혼동하는 이상한 방으로 들어가 평안과 안식을 찾는다. 그런데 버림받고 학대받은 이상한 여자아이가 그녀의 삶에 뛰어들면서 그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새로운 무언가를 꿈꾸기 시작한다. SF 소설이라고 하지만 작가는 일반 과학 소설과는 달리 인위적인 설정이 아닌 지극히 현실적인 설정 아래 오로지 주인공의 독백과 내면에 이는 심리의 변화 등을 통해 미래의 모습을 표현했다. 작가의 직관과 통찰력이 넘치는 문체는 미래를 향한 공포감을 더욱 극대화하며 그 안에서 우리가 진정 찾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만든다. 그리고 우리는 보다 본질적으로 어떤 관계를 맺고 삶을 이어가는지 등을 표현한다. 책의 첫머리는 우리가 마치 잘 아는 사람과 “너 혹시 그런 경험 있니?” 라고 이야기를 나누듯 시작한다. 당신도 나와 같은 그런 기이한 무언가를 경험했는가가 왜 그렇게 중요한 걸까? 21세기를 사는 우리들, 개인주의로 서로 분리되고자 발버둥치지만 우리는 우리와 닮은 어떤 것에 무한한 애정을 느끼고 안도하고는 한다.
“우리는 모두 그 시절을 기억한다. 그 시절은 나에게나 다른 사람들에게나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가 함께 겪었던 사건들의 기이함을 서로에게 계속 이야기하며, 그렇게 거듭 이야기하고 또 들으면서 우리는 마치 ‘그쪽도 그랬나요? 그렇다면 정말 그랬나보군요, 맞아요. 정말 그랬어요. 그랬을 수밖에요. 내가 헛것을 본 건 아닐 테니까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여행 중에 이상한 동물을 보았던 사람들처럼 각자가 보았던 것을 맞춰보거나 서로의 말에 반박한다.” —본문 중
『작가수첩』은 1942년 소설 『이방인』의 발표와 함께 문단과 지식인 사회에서 주목을 받아 문학적 성공을 거둔 알베르 카뮈의 작품이다. 22세이던 1935년부터 자동차 사고로 사망한 1957년까지 쓴 7권의 노트 기록 중 1935년부터 1942년까지의 기록을 모은 것이다. 그가 두서없이 기록한 노트를 통해 우리는 작가 알베르 카뮈의 고민과 분노, 열정, 갈등을 세세히 읽을 수 있다. 또한 이후 발표한 작품들의 탄생 과정과 문학적 바탕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작품 구상을 위한 메모와 단편적인 생활의 감상들, 철학적 사유와 문학적 생각 등이 모인 이 책은 작가의 내면세계를 어떠한 여과도 없이 날것으로 보여준다. 그를 작가가 아닌 한 인간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주며 그를 둘러싼 사회의 모습, 그 안에서 그가 느낀 인간의 존엄성과 삶과 죽음의 성찰, 예술, 자연의 감상, 그의 여행의 흔적들을 찾을 수도 있다. 또 세계와 삶의 무의미, 즉 부조리를 확인한 그는 무의미와 부조리에 의미와 통일성을 부여하려는 힘겨운 노력이 예술임을 믿고 이와 같이 수첩에 적어놓았다. “만약 이 세계에 어떤 의미가 있어 보인다면 나는 글을 쓰지 않을 것이다.” 그는 창조와 글쓰기의 의미에 대한 지속적인 반성, 행동지침을 정하고 스스로의 정신을 일깨우고자 노력한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결핵을 앓으며 힘겨운 시기를 보내던 1942년,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그는 부조리에 대한 반항을 신화적 차원에서 형상화한 소설 『페스트』를 완성하기도 했다. 따라서 이 책은 글을 쓰고자 하는 작가 지망생들에게는 필독도서이며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궁금한 이들에게도 좋은 영감을 줄 수 있는 책이다. 그가 작가로서 가지려 했던 지성과 철학적 관점은 우리 세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글을 쓴다는 사실 속에는 내게 부족해지기 시작하는 개인적인 확신의 증거가 담겨 있다. 무엇인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확신, 자신이 느끼는 것, 자신의 존재가 모범으로서의 가치가 있다는 확신, 자신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라는, 자신이 비겁하지 않다는 확신. 나는 지금 그런 모든 것을 잃어가고 있다. 나는 내가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게 될 순간을 상상하기 시작한다.” —본문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