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October, 2016
본질을 잃은 삶으로부터
Editor. 지은경
농사에 관한 작은 잡지를 만들며 만났던 농부들을 보고 자신이 놓치고 있는 본질이 무언지 고민하고 있다.
그렇다고 지금의 것을 내려놓을 마음도 없는, 즉 이도저도 아닌 경계선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서 있는 것 같아 심장이 자주 벌렁거린다.
사회는 그냥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라 하지만, 그 법칙을 잘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내가 보기에는 그저 살아지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 세상이다. 좋은 삶이란 무엇이며 공동의 이익이 무엇이냐고 외치는 사람들도 많지만, 공익을 외치며 자기 실속만 차리려는 얌체들 내지는 이기주의자들, 인류의 미래를 걱정한답시고 현재의 작은 노력은 무시하는 사람들, 어떤 순간에도 함께라 외치면서 결정적인 순간에선 자신의 안위만 찾으려는 사람들을 훨씬 많이 봐왔다. 그리고 나조차도 그치들 사이에 종종 속해 있다. 어쩌면 나약하고 어리석은 인간이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우리 사회, 즉 대한민국 사회는 장기적인 시선보다는 단기적인 시선으로 문제를 해결해왔거나 그런 척해왔으며, 보이지 않는 깊이보다는 눈에 확 띄는, 그러나 0.1mm조차도 안 되는 두께의 가벼운 외형에만 연연했고, 큰 그림의 심사숙고보다는 좁고 빠른 선택으로 행해진 경솔함으로 움직여왔다. 사람들은 좋은 사회 만들기에 무감각하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만 집중한다. 하지만 우리가 속한 사회가 결국 우리 삶을 결정한다는 것, 정치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말한다는 것, 그리고 우리의 소비 형태가 사회를 어떻게든 변화시킨다는 것은 모조리 간과하고들 있다.
우리의 교육 문제는 또 어떤가? 그야말로 최악 중 최악이다. 우리나라 청소년처럼 불행한 학창시절을 보내는 아이들이 또 있을까? 학교는 오로지 경쟁의 삶만을 가르친다. 기준은 언제나 내가 아닌 남이고, 남보다 더 빨리, 남보다 더 잘, 한국사는 나와 내 나라를 이해하기 위함이 아닌 시험 과목으로만 존재했다. 그래서였을까? 난 고등학교 시절이 정말 싫었다. 보이지 않는 구속이 싫어서 학교에 가장 늦게 도착하는 학생이었고, 좋아하는 과목도 경쟁 구도에 서면 흥미를 잃고 말았다. 지금이야 “그런 엉성한 잣대로 나를 재단하려 들었다니”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훨씬 더 심각하다. 그런 삶에 익숙해지면 삶에 ‘나’는 없고 온통 ‘남’의 시선만이 가득하다. 그러니 독특한 발상이란 찾아볼 수도 없고 여기저기서 훔쳐오거나 따라 하는 것들뿐이다. 좋은 학교를 졸업했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의 삶만큼 슬픈 것도 없다. 그 어렵다던 학교 졸업하면 뭐하나, 아무 의견도 낼 줄 모르거나 앵무새처럼 달달 외우거나 그것도 아니면 아무 생각 없이 겉도는 ‘말을 위한 말’뿐인 것을. 결국 그까짓 졸업장 하나 가지려고, 또 그런 짓거리를 하려고 소중한 시간을 다디단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교실에서 독서실에서 그렇게 허비해왔을까? 이 모든 것이 심각한 것이 아니라고 진정 말할 수 있을까? 한 사람의 인생을 망쳐놓은 것도 큰일인 것을, 여러 세대 사람들의 대부분을 산송장으로 만들어놓은 이 사회는 이 죄를 어찌 다 감당할까?
이 책을 기획한 참여연대는 참여민주주의와 인권이 실현되는 민주주의 건설을 목표로 하고 시민의 힘으로 세상을 바꾼다는 노력과 성과를 거듭하며 성장해온 단체다. 책은 민주주의, 평화, 차이와 공존, 경제민주주의라는 네 가지 주제 영역과 관련해 시민이 취해야 할 입장과 사회적 해법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하고,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점들을 되짚어보게 한다. 그리고 사회에 만연한 수많은 불협화음과 갈등을 살펴보게 한다. 그 연장선으로 짧은 안목과 좁은 시선, 단기적인 해법에서 나오는 모든 부산물, 그중에는 디자인에 관해서도 함께 고민해볼 수 있다. 일회용, 플라스틱으로 가득한 사회를 우수한 재료로 만든 좋은 디자인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글을 쓰기 이전에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명확하게 표현하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가 디자인하고자 하는 삶이 어떠했으면 좋을지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삶의 본질은 이미 없어진 지 오래니 다시 찾으려는 생각보다는 정말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버려야 할 것과 간직해야 할 것들을 일렬로 나열하고 새롭게 정돈해볼 수 있을 것이다. 입만 열면 ‘경제, 경제’에서 이제는 좋은 사회가 무엇이고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책은 말한다. 단 ‘우리’에 대해 많이 비관적인 나와는 달리 책은 아직도 사람들과 ‘선’, 공익의 가치 추구에 많은 희망을 걸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책이 말하는 것처럼 이루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다만 책을 통해 너무 혼돈의 상태라 어디서부터 청소를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마음을 나름대로 정리할 수 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새롭게 상상할 수 있는 단계까지 도달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의미가 깊다.
공공의 가치, 집단의 가치를 운운한다고 해서 무식하게 종북이나 공산주의를 외치지는 말자. 멋진 단체야말로 멋진 개인들의 모임이다. 개개인의 가치가 향상되고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허례허식은 사라지고 본질을 바라보는 사회, 즉 불행한 사람들보다 행복한 사람이 훨씬 더 많은 사회가 될 터이니 말이다. 과연 우리는 ‘반성된 미래’를 맞이할 수 있을까? 나는 어디까지나 비관적이지만 내 예상이 빗나갔으면 하는 마음은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