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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2020

본격 요괴 힐링물!

Editor. 김지영

주말이면 한가로이 만화방으로 향한다.
사람들이 제각기 짝지어 다니는 거리를 샌들에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안경까지 장착하고 걷고 있노라면 자유롭기 짝이 없다.

『나츠메 우인장』
미도리카와 유키 지음
학산문화사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두려워한다. 예상하지 못하는 범주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무언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간혹 동경으로 변하기도 한다. 오래된 전설을 파헤치거나 귀신이 나온다는 폐허에 직접 탐험을 나서는 식으로 말이다. 내게도 두려움이 동경으로 변한 경우가 있다. 설화에 등장하는 종족 요괴인데, “무슨 그런 요괴를 좋아하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엄연히 요괴와 귀신은 다르다. 귀신은 인간이 죽어 영혼의 모습으로 떠돌아다니는 혼령이고, 요괴는 전설이나 민담에 등장하는 가공의 생물로 오래된 물건 혹은 나무나 식물 같은 것에 형상화되어 깃든 염원이다.
개인적으로 치유계 만화를 좋아한다. 흔히 ‘힐링 애니’라고 부르는데,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지거나 위로를 주는 작품이나 일상물의 하위장르라고 보면 된다. 치유물에서는 사회나 세계가 위기에 놓이는 자극적인 갈등구조보다는 인간관계에 관련된 소소한 갈등구조를 지닌다. 유명한 치유물 애니메이션으로는 <곰돌이 푸> <바이올렛 에버가든> <나츠메 우인장> <보노보노> <아리아> <후르츠 바스켓> 등이 있다. 미도리카와 유키의 『나츠메 우인장』은 치유물 중에서도 ‘요괴’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우스갯소리로 ‘요괴힐링물’이라 소개되기도 한다. 2006년 12월부터 연재를 시작한 이 만화는 짧은 시간에 독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제작됐다. 이 만화는 요괴를 보는 나츠메 타카시가 외할머니 나츠메 레이코의 유품인 ‘우인장’을 물려받으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여기서 ‘우인장’은 요력이 강했던 레이코가 요괴들과 겨뤄 이겨서 받아낸 이름을 적은 책인데, 우인장에 이름이 적혀 있는 요괴들은 우인장을 지닌 사람의 노예가 된다. 다시 말해 아무리 힘이 강한 요괴라도 우인장에 이름이 있다면 우인장 주인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다.
『나츠메 우인장』에 대해 말하려면 끝이 없지만, 이 만화를 보면서 가장 강하게 들었던 의문 하나를 꼽으면 ‘인간과 요괴는 정말 다를까?’였다. 어릴 적부터 요괴를 봤던 타카시는 무서운 마음에 어른들에게 도움을 구하지만 어른들은 타카시를 소름 끼치는 아이로 치부하고, 또래들은 어른들에게 관심받고 싶어하는 거짓말쟁이라며 배척한다. 물론 그들은 객식구가 정상적이지 않은 발언을 하니 귀찮았을 테고, 부모의 관심을 빼앗길까 봐 질투 났을 테지만, 정붙일 곳 없는 아이를 향한 인간의 이기심과 폭력성에 진저리가 난다. 퇴치사들은 더 가관이다. 자신들의 집인 숲을 파괴하려는 인간을 막으려는 요괴를 봉인하고, 쓸모를 다한 식신(퇴치사가 부리는 요괴)은 퇴치하고, 최상급 요괴를 깨우기 위해 다른 요괴를 재물로 바치는 등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잔혹한 행동을 일삼는다. 요괴가 인간을 괴롭힌다 한들 과연 인간에게 그들을 죽이거나 영원히 봉인할 권한이 있는가? 특히 요괴는 자연의 일부인데 같은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그들을 통제할 권한이 있느냐는 것이다.
인간 사회와 요괴 사회는 다른 점이 거의 없다. 인간 세상에 살인을 저지르거나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는 인간이 있듯 심성이 악한 요괴가 있고, 마음씨가 곱고 베풀길 좋아하는 인간이 있듯 평화주의 요괴가 있다.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것처럼 강한 요괴가 약한 요괴를 괴롭히기도 한다. 다만 요괴가 인간보다 단순하고 솔직하다는 면에서 어떻게 보면 ‘낫다’고 봐도 좋다. 대체로 요괴가 인간을 괴롭힐 때는 인간이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무언가를 가져갔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생존을 위협하는 경우다. 불만을 해소해주면 이들은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이들은 오히려 인간 사회에 간섭하거나 참견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을 사랑스러운 생명으로 바라보는 요괴도 있다. 특히 타카시 주변의 요괴들, 만화에서는 ‘타카시 개(犬) 모임’이라고 부르는 요괴 집단이 있는데, 그들은 자신들을 진심으로 대하는 타카시에게 헌신을 다한다. 입으로는 툴툴대도 타카시가 감기에 걸리면 힘든 여정을 거쳐 감기에 좋다는 약을 구해오고, 타카시를 납치한 요괴를 혼내주기 위해 온몸을 내던진다. 어쩌면 그들이 인간보다 더 낫지 않은가?
인간에 대한 혐오는 이쯤에서 접어두자. 어차피 인간은 상상을 뛰어넘는 짓을 하는 족속이니 요괴와 비교하면 괜한 인류애만 바닥난다. 『나츠메 우인장』이 인간을 돌아보게 하고 우리 사회에 진정 필요한 인간성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는 거창한 평가보다는 이야기 곳곳에 등장하는 따뜻한 요괴들의 사연과 타카시를 지키는 ‘냥코선생’, 그리고 그를 이해하고 감싸주는 친구들과 가족들의 모습을 통해 삶의 위안을 얻기를 바란다. 괜히 ‘본격 요괴힐링물’이 아니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