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푹 찌는 여름이 계속되는 동남아시아는 대표적인 휴양지다. 휴양과 여행은 엄연히 다르다. 국내든 해외든‘휴양’을 하러 간다고 하면 여행지에 대해 더 알고 현지 문화를 체험하기보다는 그곳이 우리에게 제공할 수 있는 것만을 즐기면서 개인적 쉼을 찾으려는 목적이 강하다. 반면 여행은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과맥이 통하는 적극적 탐구 행위이기 때문에, ‘로마법’을 알면 알수록 그 재미가 배가된다. 그래서인지 여행지에 도착했을 때는 이국 풍경이 참 생경하지만, 여행 막바지에 접어들면 그 나름의 질서로 이어지는 삶을 보며 ‘어딜 가든 사람 사는 건 똑같다’고 되뇌게 된다. 로렌조 마토티Lorenzo Mattotti가 그린 베트남 풍경도 그러하다. 여러 겹의 선으로 이루어진 그림 속 개체들에서 어쩐지 익숙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제3세계 국가 중에도 베트남은 특히 굴곡진 근현대사를 겪었다. 19세기 말부터 50년 동안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았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잠깐 일본에 점령되었으며, 얼마 안 가 내로라하는 강대국들과 여러 차례 전쟁까지 치렀기 때문이다. 프랑스와 7년, 미국과 거진 15년, 북베트남의 사회주의 체제로 통일된 이후 중국과의 전쟁까지. 20세기 중반, 분단 독립한 한국이 민주주의의 기틀을 다지느라 고전하던 때에도, 베트남 땅은 계속 전쟁 중이었다. 특히 ‘베트남 전쟁’이라 불리는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은 냉전 상황 아래서 미국뿐만 아니라 당시 미국의 도움을 받아 독립한 한국과 오스트레일리아까지 파병하면서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었다. 어찌 되었든 베트남은 이 모든 나라들의 군대를 50만 년 역사를 지닌 그들의 땅 밖으로 무사히 몰아내고, 공산주의 체제로 통일을 이뤘다. 그러나 열강들을 물리쳤다는 일말의 자부심이 남았다 하더라도, 전쟁이 지나간 자리는 폐허였다. 경제와 사회는 그야말로 초토화되었고, 남베트남의 주요 인사를 포함한 민주주의자들은 숙청되거나 피난을 가야 했다. 이때 피난을 떠난 사람들이 베트남 난민, ‘보트피플’이다.
캐나다에서 자전적 소설인 데뷔작 『루』를 출간한 뒤 디아스포라 문학의 거목으로 떠오른 작가 킴 투이Kim Thúy는 1968년 사이공(현 호찌민)에서 태어나 10살 때 베트남을 떠난 보트피플 출신이다. 『만』에서는 제목과 동명의 여성 ‘만’이 가지는 베트남인으로서의 정서와 이민을 포함한 개인사가 짧은 글들을 통해 전개된다. 소설의 중심 소재는 음식으로, 만은 보트피플 출신의 남편과 함께 베트남 식당 ‘만’을 운영한다. 이 식당은 매일 달라지는 한 가지의 음식만 준비해서 그날엔 그것만 판매한다. 그는 사이공 시장에 잔뜩 쌓여 있는 바나나 품종에 대해 가르쳐주던 엄마를 생각하며 땅콩과 코코넛을 기본 재료로 하는 바나나 디저트를 만들고, 사이공 차이나타운에서 팔던 요리 ‘쩌런’에 담긴 다국적의 맥락들을 회상한다. 쩌런은 토마토소스에 찐고기와 돼지고기 미트볼인데 바게트 빵이 함께 곁들여 나온다. 프랑스 식민 지배의 역사가 이 한 접시에도 새겨져 있다는 듯 ‘자연스럽게’ 말이다. 베트남 식당 ‘만’의 음식은 손님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요리사인 만이 베트남 음식과 어린 시절 베트남에서의 향수를 떨어뜨려 생각하지 못하는 까닭일 것이다.
자기 이름을 건 식당은 만에게 새로운 인생을 펼쳐주었다. 먼저 그의 둘도 없는 지지자인 퀘벡인 친구 쥘리를 손님으로 만난다. 쥘리와의 관계 속에서 만은 프랑스어와 베트남어, 서구 문화권과 자신이 온 나라의 관계 맺기 및 소통 방식의 차이를 느껴간다. 잘 울고 더러 크게 웃기도 하는 친구를 보면서, 얼굴을 가리지 않고 웃거나 남들 앞에서 대놓고 슬퍼하지 않는 자신과 베트남 여성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쥘리의 도움으로 그는 자기만의 베트남 요리책을 펴고, 그 책이 프랑스에까지 진출하는 등 어린 시절 상상도 못했던 삶을 살아간다. 심지어 프랑스에서는 인생의 첫사랑도 경험한다. 그리고 이 모든 바탕에 만의 인생에 개입한 세 명의 엄마들과, 그 모두에 얽힌 복잡한 베트남 역사가 있다. 그는 서구 문명이 주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누리면서도, 적당한 거리를 두고 베트남 본연의 문화, 즉 ‘합리적’이지 않아 보이고 잊혀가는 풍습을 따뜻하게 간직한다.
『만』은 프랑스어로 쓰이고, 캐나다에서 먼저 출간된 소설이지만, 이 소설을 포함한 이민자들의 이야기 역시 베트남 역사의 일부다. 겉만 볼 때는 알 수 없는 베트남의 내밀한 문화가 이야기 곳곳에 등장한다. 장례식에서 돈을 받고 곡하는 여성들을 제외하면 베트남 여성들은 밖에서 대놓고 울지 않는다는 것, 베트남어에서는 ‘그’나 ‘그녀’ 식의 인칭대명사 없이 관계를 직접 지칭해 대화만 들어도 그들의 관계를 알 수 있다는 것, 7월마다 혼령들을 달래 이승에서 떠나도록 가짜 종이 돈과 옷을 태우는 의식을 행한다는 것…. 『루이 비통 트래블 북』 〈베트남〉 편에도 이런 문화와 대화가 깃들어 있다. 여행지에서 보았다면 그저 ‘와’하고 잠시 감탄하고 말았을 모습을 작가 로렌조 마토티는 자세히 들여다본다. 겹겹이 쌓여 있는 물건들이나 산과 강, 돌 사이에 겸손한 듯 구부정하게 수그린 사람들이 모자로, 바구니로, 배로 풍경 속에 스며들어 있다. 모나지 않은 단순한 외곽선은 이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판단하지 않고, 그 삶에 함께 젖어드는 듯하다.
소설의 제목이자 주인공의 이름인 ‘만’은 ‘완벽히 충족되었다’ ‘모든 소원이 이루어졌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프랑스인이라 추정되는 생물학적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오뚝한 코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다. 만은 다른 베트남 여인들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코를 잡아당기며 콧대를 세울 필요가 없다. 하지만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뜻의 이름 때문에 그는 삶에 무언가를 더 바랄 수 없었노라고 자신의 인생을 요약한다. 작가는 이런 정서를 소설의 주인공뿐만 아니라 베트남인 모두에게서 보는 듯하다. 일 년에 한 차례, 우기와 건기로 구분되는 것 외에는 변화없는 날씨에 대해 베트남 사람들은 서로 얘기하지 않으며, 이들은 주어진 상황을 그저 기꺼이 받아들인다고 그는 서술한다. 이런 정서는 마토티의 그림 속 풍광과, 소설 속 만의 엄마가 낭송하는 전래 민요의 가사에서도 드러난다. 이들의 소망이자 구속, 믿음인 ‘만’이라는 미덕 말이다.
“연못에 핀 연꽃보다 아름다운 게 있으리, 녹색의 잎, 하얀 꽃잎, 그리고 노란 암술이 누가 누가 예쁜가 노란 암술, 하얀 꽃잎, 녹색의 잎이 누가 누가 예쁜가 진흙 곁에 피어나도 냄새 없는 꽃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