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배병우의 흑백사진이 강하고 아름다운 이유는 피사체의 색을 앗아감으로써 피사체가 가진 질감에 더욱 집중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시에 그 섬세한 자락들이 살아 움직이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피사체가 되었건 바라보는 이의 시각을 오래, 그리고 깊게 파고들어 그 안에 머물게 만든다. 사진작가 배병우의 ‘윈드스케이프’, 바람이 만들어 낸 경치, 즉 ‘풍경’에는 바람의 흔적과 질감이 가득하다. 바람은 그저 사물을 움직이게 하는 공기의 순환 작용만이 아니라 이야기와 수많은 감정을 지닌 존재처럼 보인다. 바람이 많이 부는 섬 제주, 그러나 누가 바람을 묘사할 생각을 했을까? 눈에 보이진 않지만 언제나, 또 어느 곳에나 있는 이 바람을.
“하늘과 땅 사이에 바람이 분다. 철새 떼는 날고 나는 걷는다. 종탑은 슬슬 기울고 땅으로 솟다 하늘로 돌아간다. 텃새는 둥지에서 지저귀고 나는 기우뚱거리며 집으로 향한다. 고향이라는 육체로부터 태어난 나무와 풀과 짐승, 그리고 사람은 그 근원지로부터 완벽하게 탈출할 수 없다. 몸은 전 세계 위를 떠돌지만, 몸속의 본능은 언제나 고향의 한 부분을 품고 있으며 그 안에서는 볕과 자연이 꿈틀거린다. 그리고 나로 하여금 아름다움의 표준을 정하게 하고 그에 따라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이 바깥으로 형태를 입고 나타난다. 나는 그 장면을 사진 속에 담는 것이다.”
바람은 어떤 존재일까? 먼 곳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존재일까, 성이 나서 떠도는 공기 덩어리일까? 어찌 됐든 지구와 그 위에 사는 모든 생명체는 언제나 바람에 둘러싸인다. 배병우의 사진 속 제주에도 바람이 머문다. 그 바람은 수많은 오름과 오름 사이, 돌담으로 난 구멍, 들판에 자라난 풀잎들 사이를 지나며 향기를 머금고 내뱉기를 반복한다. 제주도만의 고유한 기운을 형성하는 듯하다. 그 바람은 한라산에서 뛰어놀던 아기 노루의 보드라운 털을 스친 바람일지도 모른다. 30만 년 전 오름이 솟을 때 그 앞을 지나던 바람일지도 모른다. 그 바람은 우리를 시간과 공간, 그리고 모든 개체를 망라하며 우리의 시공간을 하나로 연결한다. 어쩌면 그것이 그의 사진 속 메시지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