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March, 2016

무신론 교과서

Editor. 신사랑

『책』 합본호를 마감하고 지긋지긋한 겨울 날씨를 피하고자 말레이시아로 휴가를 갔을 때의 일이다. 사람과 마주치기조차 힘들 정도로 외진 휴양지에서 만난 한 명의 여행객은 영국 출신 목사였다. 그와의 짧은 대화는 이랬다. “어느 나라에서 왔니?”(80세는 족히 되어 보이는 할아버지셨다.) “한국에서 왔어요.” 한국이란 말을 듣자마자 활짝 웃으며, “오! 한국!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 나도 한국에 여러 번 갔었지. 아무개 목사도 만났고. 너 그 목사 알지?” 나의 종교관에 대해서 한 치의 의심조차 없이 그는 해맑게 물었다.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내 얼굴은 점점 굳어갔고, 그렇게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한 채 우리의 대화는 끝났다. 물론 직업 자체가 종교인인 사람한테 무엇을 바랐던 건지도 모르지만, 다소 극단적 무신론자인 나를 있게 해준 리처드 도킨스 박사와 크리스토퍼 히친스가 태어난 영국에서 온 목사라면 무언가 다를 거라고 기대한 나도 그 목사만큼 한 나라에 대한 왜곡된 기대감이 있었던 것 같다. 그와의 만남은 휴가가 끝날 때까지 나의 뇌리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30대가 된 이후부터는 주변에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두고 살지 않아서 특별히 추천하지 않아도 됐던 세 가지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학생 시절 수동적인 무신론자에서 적극적이고 확신에 찬 비종교인으로 거듭나게 해준, 내게는 너무나도 고마운 책들이다. 이 책들을 독실한 종교인들에겐 권하고 싶진 않다. 이미 장님처럼 믿는 이들에게 이 책들은 가혹할 정도로 명확하고 논리적으로 그들의 교리를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다만 종교인들 속에서 본인의 무신론을 자신감 있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동지’ 들에게 추천한다!

『기독교 국가에 보내는 편지』 샘 해리스 지음
동녘사이언스

믿음이 내포하고 있는 몇 가지 문제들을 지적하기 전에, 먼저 당신과 내가 동의하는 것들을 살펴보자.
예를 들어, 우리 중 한쪽이 옳다면 다른 쪽은 틀렸다는 것에 동의한다. 성경은 신의 말씀이거나 그렇지 않다. 예수는 인간에게 유일하고 참된 구원의 길을 주거나 그렇지 않다. 우리는 진정한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모든 신앙들이 틀렸다고 진지하게 믿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만약 기독교가 옳고 내가 무신론을 고집한다면, 나는 지옥에서 고통을 받아야 한다. —서문 중

신을 믿지 않지만 종교를 믿는 측근들 때문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는 당신, 소위 모태신앙인으로 태어나고 자라 선택권 없이 살다가 서서히 정신을 차리고 자아 성찰에 다가가는 그대, 그냥 종교라는 것 자체에 별 관심이 없어 왜 무신론의 입지가 중요한지 생각 안 해본 자가 있다면, 샘 해리스의 『기독교 국가에 보내는 편지』를 입문서로 추천한다. 100쪽가량의 짧지만 명쾌하고 강력한 이 책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독교 교리가 가진 문제점을 중심으로 두고 있다. 하지만 사실 이 책은 모든 종교가 가지고 있는 위험한 자기 합리적 신앙 체계의 모순성에 대해서 기독교를 기반으로 이야기하고 있어 충분히 다른 종교에 대한 문제점도 함께 생각해볼 수 있는 객관적인 책이다. 또한 해리스는 이 책에서 도킨스 박사의 『만들어진 신』과 히친스의 『자비를 팔다』의 내용도 짧게 논의하고 있어 저자의 책을 읽고 어느 정도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한 이들이 더욱 심층적으로 공부해볼 수 있는 다음 단계도 제시해주고 있다.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히친스의 『신은 위대하지 않다』, 데닛의 『주문을 깨다』 등과는 조금 다르게 해리스는, 도발적이고 선동성 있는 대중적 글쓰기로 다소 따분하고 무거울 수 있는 내용을 우리에게 명쾌하게 전달한다. 이제 당신도 거침없고 발칙한 해리스의 글로 21세기형 깨우침을 얻기 위한 그 첫걸음을 시작해보자.

『만들어진 신』 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영사

동조자들을 향해 설교하는 더 미묘한 이유는 의식을 일깨우기 위해서다. 여성운동가들이 성차별 대명사들에 대한 우리의 의식을 일깨울 당시에, 그들의 설교대상은 여성의 권리와 여성 차별의 해악이라는 더 실질적인 현안들에 관심을 지닌 동조자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올바르고 열려 있는 동조자들도 일상언어의 측면에서는 의식을 일깨울 필요가 있었다. (…) 무신론 동조자들도 거기에서 예외가 아니다. 우리 모두는 깨어날 필요가 있다. 유신론자들뿐만 아니라 무신론자들도 신앙을 특별히 존중해야 한다는 사회관습을 무의식적으로 지키고 있다. —문고판 서문 중
앞서 샘 해리스의 『기독교 국가에 보내는 편지』 속의 간결하면서도 날카로운 논리에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면 당신은 이제 도킨스 박사의 『만들어진 신』을 읽을 준비가 끝난 것이다. 이 책이야말로 당신이 생각할 수 있는 무신론에 대한 모든 의혹, 자기 회의, 논쟁점, 반론들을 속 시원하게 날려버릴 수 있는 최고의 가이드다. 창조론을 믿고 신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왜 도킨스 박사를 불구대천의 원수라고 생각하는지 이해가 갈 정도로 이 책에서 도킨스 박사는 그가 얼마나 어마어마한 강적인지를 모든 방면에서 입증한다. 종교가 없어도 균형 잡힌, 행복하고, 도덕적이고, 지적인 삶을 얼마든지 영위할 수 있다는 주장을 가지고 전개되는 이 책에서는, 다신교에서 일신교로 변화한 인류 종교역사를 짚어보는 것을 시작으로 신의 존재를 옹호하는 전반의 모든 논증을 침착하고 논리적으로 파괴하며, 절대적인 창조신이 없는 것이 어떻게 증명될 수 있는지를 과학자의 시점에서 체계적으로 보여준다. 나아가 도킨스 박사는 인류가 왜 종교 없이도 근본적으로 도덕적인 생물체인지를 다위니즘에 입각해 설명해내고, 그가 왜 이렇도록 종교에 적대적인가를 현시대의 사회적, 교육적, 인류애적 모든 상황에 적용해 보여준다. 종교와 비종교 사이에서 망설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더는 겁먹고 움츠려 있지 말라고 선언하는 600쪽 남짓한 이 책은 전혀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기백 가득한 짜릿한 경험을, 읽는 이에게 선사해줄 것이다.

『자비를 팔다』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모멘토

그녀의 목적은 고통을 성실하게 덜어주는 것이 아니라 죽음과 고통, 그리고 굴종에 기반한 일종의 신흥종파를 선전하는 것이다. 마더 테레사(그녀 자신은 심장 질환 및 노환과 싸울 때 서양에서 가장 우수하고 값비싼 병원들에서 치료받았다는 사실에 유의하자)는 언젠가 인터뷰에서 속내를 드러낸 적이 한 번 있었다. 그녀는 말기 암의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던 한 사람에 대해 이야기했다. “당신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처럼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께서 당신에게 입 맞추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본문 중
앞서 도킨스 박사의 『만들어진 신』과 해리스의 『기독교 국가에 보내는 편지』가 광범위하게 종교의 문제점을 이야기했다면, 히친스의 『자비를 팔다』는 테레사 수녀라는 한 인물의 일생을 통해 비뚤어진 종교적 신념이 실질적으로 얼마나 세상에 해로운지를 현저히 보여주고 있다. 히친스는 테레사 수녀가 본격적인 구호활동을 시작하고 약 30년 동안 받은 후원금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큰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시설에 간단한 구호물품조차 없다는 것을 납득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얘기한다. 그녀의 시설에선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진통제조차 없이 고통 속에 죽어갔다. 그렇게 많은 후원금을 가지고도 왜 이럴 수밖에 없었는지를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실제 테레사 수녀와 함께 일한 수녀들과 자원봉사자들에 의하면 테레사 수녀는 그녀가 운영하는 시설에 구호물품들이 갖춰지는 것을 강경하게 반대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그녀의 행동을 히친스는 “가난과 고통은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굳게 믿는 그녀의 기형적 신념에서 나온 반인도주의적인 끔찍한 강요라고 말한다. 『자비를 팔다』에서 히친스는 지속적으로 테레사 수녀가 빈민 구호보다는 선교사업에 치중하려 했던 그녀 자신의 목적을 크게 숨기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녀 행동의 문제성보다는 권위와 명성에 휩쓸려 쉽게 거짓을 진실로 받아드리는 우리의 안일함이 훨씬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테레사 수녀를 ‘희생의 어머니’라며 무조건 숭배하는 우리 사회에게 히친스의 날카로운 시선은 왜곡된 진실을 다시는 맹목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게 하는 단호한 가르침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