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January·February, 2016
모험은 계속된다
Editor. 신사랑
무엇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열광하다 보면 자연스레 그 대상에 대해 연구하게 되고, 그것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고, 조금이라도 더 그 세계에 들어가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비슷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팬덤이 생성될 경우, 공감대가 형성된 환경 속에서 엄청난 양의 열정과 시간을 기꺼이 소비해가며 관심대상에 대한 섬세함을 나누고 공부하기도 한다. 특히 이 대상이 문학 또는 영화일 경우에는 일방적인 숭배를 떠나서 창작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특정 작품 또는 작가의 스타일을 모방하여 창작으로 풀어내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원작의 스타일, 관습, 모티프를 뒤틀고 비아냥거림으로써 웃음을 만들어 풍자적으로 모방하는 패러디,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에 영향을 받아 특정 부분을 모방하여 작가에게 헌사하는 오마주, 그리고 두 가지를 포괄하여 대다수가 기억하는 특정 작품 속의 스타일이나 아이디어를 과감히 가져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파스티슈가 있다. 문학, 특히 시리즈를 이루는 소설 장르에서는 이미 작고한 작가의 지적 상권을 소유한 재단에서 엄선한 작가에게 새로운 시리즈를 의뢰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물론 자신이 사랑하는 작가의 작품 세계가 왜곡되거나 변질될까봐 이러한 공식적인 파스티슈를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결국 진정한팬들에게는 자신이 열광하는 이야기 세상이 멈춰 있지 않고 팽창되어 함께 진화해간다는 것이 분명 흥미로운 소식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스웨덴의 저널리스트 스티그 라슨의 데뷔작이자 유작인 ‘밀레니엄’ 시리즈가 후속작을 가지고 우리에게 찾아왔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많은 추문과 논란이 있었다는 것을 국내 팬들은 잘 모를 수도 있다. ‘밀레니엄’ 시리즈는 사실 작가 사망 후에 세상에 발표된 조금은 특이한 사례의 소설이다.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로 사망한 라슨의 컴퓨터에서 발견된 이 세 권의 소설은 그가 취미로 작업해오던 것으로, 작업 기간 동안 별다른 출판 시도 없이 써오다가 네 권 가량의 분량이 거의 완성된 사망 직전에서야 측근에게 출판의도를 표명했다고 한다. 아쉽게도 그는 전 세계 8,000만 부 이상의 판매기록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상상조차 해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책의 큰 성공 덕분에 그의 재산상속권은 논란에 오르게 되었다. 그의 비공식적인 유서 속에 상속자로 지명된 Socialistiska Partiet(스웨덴 좌파 성향의 정당), 30년을 함께 동거한 그의 여자친구, 그리고 라슨의 아버지와 동생. 긴 법정 논쟁 후 결국 상속권은 아버지와 동생에게 주어졌다. 하지만 라슨이 생전에 미처 끝내지 못한 네 번째 소설이 담긴 컴퓨터의 소유권은 여자친구에게 돌아갔고, 그러한 이유 때문에 라슨 재단이 라거크란츠에게 의뢰한 원작 시리즈의 네 번째 책은 그 글을 참고하지 못한 채 새로 쓰이게 되었다. 힘든 여정을 거쳐 세상에 나오게 된 이 책은 제작 발표 당시부터 많은 팬의 걱정과 관심을 받아왔다. 하지만 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라거크란츠는 라슨이 그려놓은 원작의 세계를 벗어나지 않고 잘 유지시켰다는 평을 받았다. 주인공인 리스베트는 여전히 복수심으로 가득한 자기 파괴적 깡패 해커이고, 미카엘 역시 자기만의 도덕관념을 가진 괴짜스러운 저널리스트인 채 소설은 진행된다. 이렇게 원작의 세계에 충실하면서도 라거크란츠는 그만의 새로운 캐릭터들을 매끄럽게 삽입하여 더욱 깊이 있는 스토리를 구성했다. 그리고 마지막 편집 과정이 없었던 라슨의 다소 기이하고 조금은 정리되지 않은 글에 비해 라거크란츠의 글은 더욱 깔끔하고 짜임새 있게 완성되었다. 그러니 걱정들 마시고 원작에 대한 존경과 애정으로 가득한 이 네 번째 책으로 다시 한 번 리스베트와 미카엘을 만나보는 건 어떨까?
추리소설 장르 중 전 세계적으로 최고의 사랑을 받고 있는 셜록 홈즈는 원작자인 코난 아서 도일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수많은 작가에게 영감이 되어왔다. 실제로도 지난 85년 동안 다수의 작가가 셜록 홈즈의 세계와 캐릭터들을 재현한 여러 가지 파스티슈를 세상에 내놓았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홈즈 재단에 의뢰를 받아 쓰인 작품은 2011년에 출간된 앤터니 호로비츠의 『셜록 홈즈:실크하우스의 비밀』이 81년 만에 처음이었다. 후속작 의뢰를 받은 호로비츠는 장장 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엄청난 양의 자료조사와 인터뷰를 한 후에 집필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탄생한 『셜록 홈즈: 실크하우스의 비밀』은 언론의 많은 호평과 영국 베스트셀러 목록을 석권하는 성공을 이루었고, 국내에서도 20만 부 이상의 경이로운 판매실적을 이뤄냈다. 호로비츠는 작년 그의 두 번째 셜록 홈즈 시리즈 『셜록 홈즈: 모리어티의 죽음』을 출간했다. 원작 시리즈 중에도 가장 유명한 것으로 꼽히는 단편 『마지막 사건The Final Problem』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신기하게도 홈즈와 왓슨 박사가 없는 홈즈 책이다. 원작자인 코난 도일은 『마지막 사건』에서 홈즈가 폭포에서 추락사하는 것으로 결말을 내리며 시리즈를 끝내려 했지만, 독자들의 원성이 이어지자 사건 후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잠적한 뒤 세계를 유랑한 홈즈라는 설정으로 후속작을 재계했고, 이런 홈즈의 공백 기간은 그동안 무수한 작가와 팬들의 상상력에 불을 지펴왔다. 그렇기 때문에 재단의 공식 인증 작가인 호로비츠의 라이헨바흐 폭포사건 직후 이야기는 출간 전부터도 많은 관심을 받았고, 그 기대에 호응하듯 그는 홈즈와 왓슨이 없는 런던에서 그 빈자리를 메워보려는 미국 출신 사설탐정 체이스와 영국 경찰청 형사인 존스를 대신 주인공으로 세워 탄탄한 추리소설을 완성했다. 물론 기존의 홈즈식 이야기보다는 다소 더 어둡고, 더 현실적이고, 더 진중한 이 책을 홈즈 팬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미지수이지만, 실크하우스의 비밀만큼 잘 설계되고, 기술적으로 완성되었으며 보다 더욱 대담해진 추리소설을 만나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제임스 본드의 세계는 책뿐만이 아니라 영화로서도 엄청난 성공을 이뤄낸 프랜차이즈로, 무수한 본드 스타일 작품들이 세상에 나와 있다. 다른 모든 걸 제외하고 원작자 이안 플레밍 공식재단이 의뢰하여 쓰인 후속 소설만 하더라도 지금까지 서른 개가 넘을 정도다. 그리고 작년 가을, 이 수십 권을 이어받는 후속작이 출간되었다. 작가는 다름 아닌 셜록 홈즈 재단 공식 인증 작가인 앤터니 호로비츠다. 1979년부터 2002년까지의 본드 시리즈는 존 가드너와 레이먼드 벤슨이 각각 16권, 그리고 12권을 써냈지만, 그 이후 제임스 본드 시리즈는 한 작가당 한 권 이상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것은 아마도 제임스 본드라는 원 캐릭터가 가진 성향이 현대 시대에 재현되기에는 너무나도 문제가 많은 전형으로 악명 높기 때문일 것이다. 원작자인 이안 플래밍은 문학계에선 널리 알려진 사디스트였으며, 인종차별주의자에 여성혐오주의자로도 유명했다. 그러니 그가 그려내는 본드의 세계상 역시 백인우월주의와 여성 비하적인 요소들로 가득 차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거칠고 혐오스러운 개인적 성향에도 불구하고 플래밍은 비범한 문체를 가진 연륜 있는 작가였다. 그의 소설은 시작하는 첫 단락 하나로 화려함 속에 숨어 있는 극악무도한 스파이의 세계로 독자들을 옮겨놓았다. 그런 만큼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이어 쓰는 작가들에게는 불가능한 과제가 주어졌다. 그것은 바로 ‘기존 본드 시리즈와 똑같이 쓰면서도 다르게 만들 것.’ 이런 말도 안 되는 목표에 다다르기 위해 호로비츠는 두 가지 사항을 가지고 이 책을 작업했다. 첫 번째는 그의 오리지널 시리즈인 알렉스 라이더 시리즈에서 쌓은 경험(라이더 시리즈는 현대판 영국 스파이 소설이다)이고, 두 번째는 실제로 플래밍이 TV 본드 시리즈 에피소드에 사용하려고 써놓았지만 쓰이지 않았던 글을 책에 삽입하여 연결시켰다는 점이다. 『Trigger Mortis』에서 호로비츠는 어느 부분이 플래밍의 글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원작의 느낌을 잘 살려냈다. 호로비츠가 이 책을 통해 구시대적 발상으로 가득한 제임스 본드를 현시대에 맡도록 성공적으로 재탄생시켰는지는 직접 읽어보고 판단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