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September, 2021
되돌려 줄 우정
글.김정희
꿈꾸는 독서가. 책을 통해 세계를 엿보는 사람. 쌓여가는 책을 모아 북 카페를 여는 내일을 상상한다.
시멘트벽과 회색빛 바닥, 시험 대열로 띄엄띄엄 맞춰진 책상. 코로나19로 인해 달라진 교실 풍경에 생기를 더해주고 싶어 지난봄, 교실에 화분을 몇 개 갖다 놓았다. 식물의 존재 자체가 가진 잠재적 힘을 믿었다. 한창 다양한 관심사를 가질 시기의 아이들도 알게 모르게 생명체의 생기를 체득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하지만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이 내뿜는 이산화탄소가 버거웠던 걸까. 이내 허브류는 시름시름 앓았고, 한 아름 탐스러운 꽃을 피워냈던 수국은 제 빛을 완연히 잃은 데다 카랑코는 쉴 새 없이 작은 꽃잎들을 후두둑 떨어뜨렸다. 때맞춰 물을 주고 환기를 시켜주어도 소용이 없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공기 정화 식물 화분 하나만이 살아남았다. 아니, 겨우겨우 살아있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 줄기를 뻗어 나가지도, 새잎을 내지도 않고 처음의 모습만 간신히 유지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담담히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갔다. 죽은 잎을 정리하고, 환기를 하고, 적당히 물을 주고. 그러던 중 거의 포기하다시피 방치했던 수국의 밑동에서 새잎이 돋아나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이들이 학교에 오지 않던 온라인 수업 기간이었다.
식물세밀화가 이소영의 『식물 산책』과 신간 『식물과 나』를 최근 연달아 읽었다. 두 권의 책은 식물에 대한 호기심과 앎에 대한 욕구를 충족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이따금 저자가 설명하는 식물의 이름과 특징을 기억하고 싶어 소리 내어 읽기도 했다. 길을 걷다 책에서 본 꽃과 나무의 이름을 기억해낼 때면 나만의 마음 정원이 채워지는 것 같았다. 이소영 작가처럼 식물의 특별한 점을 세세히 살피고 발견하는 기쁨까지 누리는 경지는 아니지만 아는 만큼 보이고, 관심이 있는 만큼 살피게 된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다. 식물의 세계를 통해 저자가 깨달아가는 크고 작은 삶의 이치에 잔잔히 빠져들기도 했다. 겨울 눈이 불을 덮고 봄을 준비하는 식물들의 고요한 생명력, 다른 개체와 스스로를 비교하지 않고 묵묵히 때에 맞춰 자신만의 꽃을 피워내는 고유한 가치, 눈에 잘 띄지 않는 식물들과 화려한 식물들의 조화에 아름다움을 느끼며 저자와 함께 감동받고, 또 각성했다. 자연의 이치가 이토록 인간 삶의 귀감이 된다는 진리가 새삼스럽게 마음을 울렸다.
두 권의 책을 통해 조금은 역설적이게도 정원이라는 게 따로 있지 않고, 내가 살아가는 환경 자체가 커다란 정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정원의 구석구석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무심코 지나쳤던 길가의 들꽃 하나, 멋진 카페 앞을 꾸미고 있는 이름 모를 꽃에도 눈길이 갔다. 식물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소환하며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했다. 무덤 옆에서만 볼 수 있다는 할미꽃을 찾으러 친구들과 동산을 헤집고 다니다 결국 허탕치고 해질녘 집으로 돌아오기도 하고(훗날 할미꽃은 어느 집 정원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했다), 길목에 피어난 사루비아 꿀을 빨면서 피아노 학원을 오갔던 시절들이었다. 생각해보면 유년 시절부터 자연은 늘 내 삶을 감싸고 있었다.
요즘 부쩍 식물 키우기에 정성을 들이고 있다. 고사한 수국이 담긴 화분을 정리해 너무 커버린 벤자민 고무나무 분갈이를 해주었다. 수국 뿌리가 고루 뻗쳐 있는 걸 보며 이 화분의 주인이었던 수국이 죽기 전 마지막 새 잎을 틔웠던 게 기억났다. 그날, 나는 아이들이 등교하기만을 기다렸다가 깜짝 선물처럼 새로 돋은 엷은 초록빛을 보여주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벅찬 마음을 삼켰다. 자연이 안겨주는 감동을 애먼 가르침으로 경감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감탄을 자아내던 그 귀한 생명을 끝까지 지켜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여전히 죄책감이 든다. 하지만 이제는 나도 내 삶에 매순간 함께하는 식물들을 있는 힘껏 지켜보려 한다. “결국 내가 어떻게 마음먹고 얼마나 실천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림은 딱 내 의지만큼 더 정확해진다”라는 저자의 마지막 메시지처럼, 내 의지만큼 식물과 공존하며 돈독한 우정을 쌓아갈 수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