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ic : 이달의 화제
동화(Fairy tale)
에디터: 유대란, 박소정
“옛날, 아주 먼 옛날”에 태어난 기구한 운명의 주인공이 갖은 우여곡절 끝에 “결국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는 이야기, 믿을 수 없을 만큼 괴기스럽지만 덕분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이야기. 구전을
통해 내려오고 글로 기록되어 ‘동화fairy tale’라고 불리고 있다. 작자, 연대 미상인 이야기가 살을 붙이며 오늘날까지 이어져온 배경에는 상상력이 있다. 그리고 그 상상에는 온당하든, 불온하든 인류가 갈망해온 것이 들어 있다. 동화는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었고, 이야기는 곧 우리가 되었다.
아는 드라마 작가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새로운 이야기라는 건 과연 없는 걸까.” 그는 아무리 머리를 짜내서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고 하지만, 막상 써놓고 보면 이 이야기가 저 이야기 같다며 고민했다. 이야기의 살을 이루는 구체적인 요소들은 개인의 상상력, 지식의 정도, 취재력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믿지만, 뼈를 이루는 플롯은 몇 가지 안 되는 원형에서 탈피할 수 있는지, 완전히 새로운 원형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것이었다.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란 없다”라는 말은 그런 원형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문학 이론은 세상에 존재하는 무한한 이야기를 몇 가지의 분류에 다 끼워 넣을 방법을 알려준다. 분류하는 기준에 따라 적게는 3개에서 많게는 36개의 플롯의 원형으로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설명한다. 결말에 따른 분류(행복한 결말, 불행한 결말, 운명적 결말)가 있고 주인공이 대결하는 상대에 초점을 맞춘 분류가 있다(사람 대 자연, 사람, 환경, 기술, 초자연, 자신, 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야기와, 존재할 이야기를 단 한 개로 압축하는 때도 있다. 모든 이야기가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의 5단계로 이뤄졌다고 보는 경우다. 중등 국어 시간에 배운 기억이 날 것이다. 어디까지가 발단이고, 어디서부터 절정인지 단락을 나눴던 수업을 더듬어보자. 더 극단적으로, 모든 이야기를 하나의 여정으로 정의하는 이론도 있다.
이론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것은 학자들의 몫이겠지만, 아주 가까운 곳에서도 원형은 목격된다. 주말에 겪은 일, 학창 시절의 추억 따위를 타인에게 이야기할 때 우리는 무심결에 기승전결의 원리를 따르려고 노력하고, 청자가 되었을 때도 응당 그것을 기대한다. 결말이 뚜렷하지 않은 이야기는 ‘그게 다야?’라는 반응을 유발하고, 극적인 결말에 비해 전개가 빈약한 이야기는 허무함을 자아낸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를 하나의 여정으로 정의하는 이론 역시 일상에서 어느 정도의 검증이 가능하다. 우리는 이야기를 시작할 때 종종 이렇게 운을 뗀다.
“내가 OO에 갔을 때”, “OO에 누가 왔는데”
이야기의 원형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인간 본성에 대한 흥미로운 점을 시사한다. 그것을 인간의 본성과 연관 지을 수 있는 근거는 이야기의 여러 장르 중에서도 기원이 가장 오래된 동화에서 찾을 수 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대륙, 국경과 시대를 뛰어넘은 동화에는 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동화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플롯의 원형이 모두 담겨 있다. 문화, 지리, 기후 등의 환경적 풍토가 이야기의 다채로운 ‘피부’를 이루지만, ‘뼈대’가 되는 플롯은 많은 부분이 일치한다. 그래서 학자들은 동화의 기원과 함께 서로 다른 문화권별 동화의 일치점을 연구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많은 것을 알려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동화는 실로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되고 있다. 문학뿐 아니라 인류학, 사회학, 심리학, 생물학에서도 동화를 연구한다.
영국의 문화인류학자 제이미 테라니는 생물학에서 생물의 계층적 체계를 구분하는 방식을 이용해서 동화를 연구한다. 종의 상위 분류에 속, 과, 목, 강 등이 있는 것처럼 수많은 문화권에 퍼져 있는 동화의 여러 버전을 수집하고 분석해서 그들이 지닌 공통점과 차이점을 식별하고 계통을 만드는 방식으로 기원을 추적해 들어가 본다. 그는 이야기들이 문자로 기록된 것은 인류 역사에서 비교적 최근의 일이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 저 지역으로 구전되고, 세대 교체가 이루어지면서 마치 유기체가 진화하듯 이야기들이 수정되고 재창조되었으며, 그 가운데 보존된 부분과 변형된 부분을 따져 들어가면 인간 심리의 핵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