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선배에게 들은 이야기다. 1990년대 전설적인 비평지가 있었는데, 그 비평지의 이름만 알아도 ‘야, 너 뭘 좀 아는구나’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책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상체를 뒤로 젖히며 조금 우쭐한 태도로 답변했다. “『리뷰』라고 있었어. 알 이 브이 아이 이 더블유. 알아?” 하지만 선배는 그것이 어떤 장르를 다루는 잡지였느냐는 질문에는 명확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대중문화? 음. 문화도 다루고 음악도 다루고, 문학에 대한 것도 있었고. 아무튼 수준이 대단했어.”
부푼 기대감으로 ‘뭘 좀 알 것 같은’ 연장자들에게 수소문해서 받아본 『리뷰』는 선배의 말마따나 밀도가 높은 글들이 수록되어있었고 서태지, 앤디 워홀, 밴드 너바나, 축구대표팀 감독 박종환, 시인 황지우 등 전방위적으로 장르와 인물들을 다루고 있었다. 표지에 쓰인 ‘대중문화계간지’라는 문구 그대로 종합적인 대중문화지였다. 소설가 주인석, 평론가 강헌, 서영채 등 당시의 소장 비평가들이 편집진으로 뭉쳐 출판, 음악, 스포츠, 미술 등 한국 대중문화의 모든 계통을 의제로 삼았다. 이들은 당시 순수문학 계통으로 치우쳤던 비평과 문화계에 변화를 가져왔다.
1994년 탄생한 『리뷰』는 한국에서 대중문화를 본격적으로 체험한 첫 세대의 산물이었다. 1980년대 말부터, 더 구체적으로는 88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한국의 대중문화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할리우드 영화와 해외 음반사들의 ‘직배(직접배급)’의 시대가 열렸고 한국영화의 르네상스와 서태지신드롬이 목격됐다. 이 시기 청장년기에 접어든 60년대생들은 냉전과 개발독재 시대를 거쳐 문화가 산업의 일부로 편입되며 문화의 위상이 산업적 진흥의 대상으로까지 격상됨을 체험한 첫 세대였다. 그중 시대적 변화를 명민하게 포착했던, 예리하고 민첩했던 이들이 『리뷰』를 만들었다.
“마치 한 우주를 겪은 것 같다. 빅뱅에서 블랙홀까지. 이제 다른 우주가 열릴 시점이다. 우리는 계통발생사도 자본주의의 사회사도 인류의 문명사도 새로운 대폭발을 기다리고 있다. 각기 다르지만 한순간에. 이 시점에 우리는 REVIEW를 창간한다. (…) 우리 앞세대는 문학을 중심으로 문화를 분석했지만 우리의 주된 비평의 대상은 산업적인 대중문화이다. 문자가 아니라 이미지와 소리의 테크놀로지를, 작가가 아니라 문화산업의 자본적 구조를, 작품이 아니라 상품의 미학을 분석하고 비평해야 하는 우리는 불행한 걸까 행복한 걸까.”
—편집위원 주인석의 ‘에피그램’ 중, 1994 겨울 창간호
『리뷰』는 한국이 문화산업의 중흥기를 맞이하던 시대에 대중문화 담론의 포문을 열었다. 이 책은 그런 변혁기의 특정성을 온몸으로 품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자료다. 이에 더해 현재로서 새롭게 느껴지는 부분은 대중문화를 소비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그것이 투영하는 이념, 정치 경제적 조건과 지배권에 대해서 지적이고, 집요하게 파고 있다는 점인데, 그런 비평의 역할이 많이 퇴조한 21세기에 성인이 된 세대로서 선망을 불러일으킨다. 그렇다고 『리뷰』가 문화를 이념투쟁의 새로운 장이나 도구로 여긴 것만은 아니었다. 제호 ‘리뷰’는 다층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는데 일차적인 맥락에서는 문화를 비평한다는 의미지만, 문화가 세계에 대한 또 다른 독립적인 ‘비평’이라는 의미에서 ‘문화리뷰’는 ‘리뷰’를 ‘리뷰’한다는 뜻인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