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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이유

에디터. 지은경 자료제공. Gestalten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산문집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약 내 묘비명 같은 것이 있다고 하면, 그리고 그 문구를 내가 선택하는 게 가능하다면 이렇게 써넣고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그리고 러너), 1949~20**,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자신이 작가일 뿐 아니라 러너였다는 사실도 명기하고 싶다고 말할 만큼 그가 달리기에 각별한 애착을 표현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대관절 달리기가 무엇이기에 인간은 저마다 자신만의 달리기에 의미를 부여하며 사는 것일까? 달리는 행위에 대한 하루키만의 강한 설득력이 담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속 문장들과 『On the Run』에 나오는 러너들의 열정적인 모습으로부터 달리기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본다.
전 세계의 스포츠 대회들이 줄줄이 취소됐다. 이곳저곳을 쏘다니던 이동의 자유와 기쁨을 누릴 수 없게 되면서 사람들은 이전 보다 더 열심히 운동하기 시작했다. 인류가 이토록 운동에 집착한 적이 또 있었을까. 전례 없는 전염병에 맞서 면역력을 키워보자는 바람도 있었을 것이다. 유럽에서는 봉쇄 기간 중 홀로 조깅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집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를 찾는 사람들에게 달리기는 특히나 큰 사랑을 받는 스포츠다. 쉽게 시작할 수 있고, 묘한 해방감을 맛볼 수 있으며, 행복감에 이르도록 활기를 불어넣는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필요한 건 오직 운동화 끈을 묶고서 문 밖으로 한발짝 내딛고, 또 한발짝을 내딛는 것. 이를 반복하면 땅을 박차고 앞으로 내달을 때마다 온몸으로 순간에 몰입하는 희열을 느낄 수 있다. 달리기의 본질은 이것이다. 최근 달리기를 새로운 스포츠로 삶에 받아들이기 시작한 사람들은 단지 기록, 대회 출전등의 목적을 위해 뛰지만은 않는다. 그보다는 불필요한 잡념을 떨쳐내고 보다 명료한 사고를 갖기 위해, 갈수록 정교해지는 알고리즘으로부터 잠시 벗어나기 위해, 뛴다는 사실만으로 누릴 수 있는 확실한 즐거움과 자유로움을 위해 달린다.
“어쨌든 나는 그렇게 해서 달리기 시작했다. 서른세 살. 그것이 그 당시 나의 나이였다. 아직은 충분히 젊다. 그렇지만 이제 ‘청년’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을 떠난 나이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조락(凋落)은 그 나이 언저리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그것은 인생의 하나의 분기점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나이에 나는 러너로서의 생활을 시작해서, 늦깎이이긴 하지만 소설가로서의 본격적인 출발점에 섰던 것이다.”_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중
짜릿하고 도전적이며 기분을 고양시키는 달리기와 경주의 경험을 숨 막히는 이미지와 결합한 책 『On the Run』은 초보자와 전문가를 막론한 모든 사람들이 달리기의 기쁨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영감을 준다. 이 책은 다양한 배경과 연령, 능력을 가진 주자들의 투지를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달리기가 우리 자신의 한계, 스스로에게 가지는 의심과의 경쟁이자 자신감 부여의 관문임을 일깨운다. 성과를 이루며 조금씩 발전해 나가는 나와의 오롯한 만남은 자신감의 밑바탕이 되고, 이는 곧 본인에게 자극을 줄 수 있는 동기부여로도 작용하는 것이다. 책의 에디터 닉 버터Nick Butter는 영국의 장거리 달리기 선수이자 모험가, 그리고 동기부여 연설가이기도 하다. 그는 2019년에 전 세계 모든 국가에서 23개월간 마라톤을 행한 첫 번째 사람이 되었다.
“여기에는 ‘철학’이라고까지는 말하기 어렵다 해도, 어떤 종류의 경험칙과 같은 것은 얼마간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대단한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그것은 적어도 내가 나 자신의 신체를 실제로 움직임으로써 스스로 선택한 고통을 통해, 지극히 개인적으로 배우게 된 것이다. 누구나 공통적으로 잘 응용할 수 있는 범용성은 그다지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무엇이 어떻든 간에, 그것이 나라는 인간인 것이다.”_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중
이 책에는 뇌성마비 마라토너 저스틴 갤고스Justin Gallegos의 프로필도 수록되어 있다. 신체적 장애에도 불구하고 그는 매주 50마일을 달리며 불가능의 경계를 재정의한다. 세 아이의 엄마인 미미 앤더슨Mimi Anderson은 36세가 될 때까지 달리기를 하지 않았다. 현재 57세인 그녀는 지구력 달리기에서 3개의 세계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도시에 사는 러너들은 커뮤니티를 구축함으로써 달리기가 그 자체로 정치적 행위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리우데자네이루 빈민가의 거리를 재건하는 게토 런크루Ghetto Run Crew는 달리기를 문화적 표현과 사회적 권한 부여를 위한 도구로 사용한다. 베를린에 기반을 둔 웨이브 런 콜렉티브Wayv Run Kollektiv의 설립 목적은 성소수자나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달리기를 통해 거리로 나오도록 커뮤니티 차원에서 지원하고 장려하는 것이다.
“가령 그것이 실제로 바닥에 작은 구멍이 뚫린 낡은 냄비에 물을 붓는 것과 같은 허망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적어도 노력했다는 사실은 남는다. 효능이 있든 없든, 멋이 있든 없든, 결국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대부분의 경우, 눈에는 보이지 않는(그러나 마음으로는 느낄 수 있는) 어떤 것임이 분명하다.” _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중
달리기는 단순한 운동이나 건강 트렌드 이상의 가치를 실현하고 육성하는 운동이다. 6피트의 간격을 두고 뛰는 주자들 사이는 무언의 언어와 연대감이 존재하다. 그리고 이들을 구경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작은 동요가 일어나기 마련이다. 『On the Run』은 울트라 트레일 뒤 몽블랑Ultra-Trail du Mont-Blanc과 배드워터 135Badwater 135, 캘리포니아 데스밸리Death Valley를 거쳐 아테네까지 25개의 마라톤과 트레일런을 소개하고 있다. 스포츠의 발상지라 여겨지는 마라톤과 아테네를 잇는 42.2km의 오리지널 코스를 따라가는 본격적인 마라톤, 세계에서 가장 힘든 코스로 꼽히는 만리장성 마라톤 등 보는 이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요소들로 가득하다. 달리기에는 인간의 본능을 자극하는 원초적인 무언가가 있다.
“강물을 생각하려 한다. 구름을 생각하려 한다. 그러나 본질적인 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 나는 소작하고 아담한 공백 속을, 정겨운 침묵 속을 그저 계속 달려가고 있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은 여간 멋진 일이 아니다.” _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중
January22_Inside-Chaeg_02_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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