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미용실 가는 것을 치과에 가는 것만큼 질색했지만 한 가지 위안이 있었다면 평소 보기 힘든 여성 잡지를 마음껏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엄마가 파마를 마는 동안은 잠시 방목의 자유를 즐길 수 있었다. 그 틈을 타서 얼씨구나 하며 미용실테이블에 널린 잡지를 골라봤다. 제호에 ‘여성’ 자가 들어가는 두툼한 잡지라면 무엇이든 ‘들추길’ 좋아했다. 유명 배우의 내연녀, 로비스트의 과거, 톱가수의 예비신랑의 얼굴을 들추고 전말을 쑤셨다. 후반부로 갈수록 수위가 높아졌다. 눈이 휘둥그래져서 ‘예쁜이 수술의 모든 것’ ‘사드백작의 여자들’ 같은 특집기사를 보고 있자면 어김없이 엄마의 ‘인터셉트’가 들어왔다. 그런데 유일하게 인터셉트 당하지 않은 잡지가 있었다. 『샘이 깊은 물』이었다.
그것이 『샘이 깊은 물』이었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다. 당시 ‘국민학생’이었던 내게 이 잡지는 별로 재미가 없었다. 내용이 전혀 원초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표지는 강한 인상을 남겼다. 앞머리를 부풀리고 입체화장을 한 지수원, 박지영, 김혜리, 채시라 같은 당대의 유명한 얼굴들 틈에서도 흑백사진에 담긴 이름 없는 여성의 얼굴은 유난히 돋보였다. 꾸밈없이 정면을 응시하는 모습이 당당하고 이지적으로 느껴졌다. 그것이 어린 눈에도 참 근사해 보였다.
1984년 창간된 『샘이 깊은 물』은 20~30대의 일반인 여성들을 표지에 등장시켰다. 평범하면서도 기품 있는 당대의 얼굴을 내건 이 잡지는 소비주의나 경박함과 거리가 멀었다. 가정과 문화를 다루면서 대부분의 여성지에서 보기 힘든 시사와 교양을 놓치지 않았다. 1993년 『샘이 깊은 물』이 지령 100호를 맞았을 때 설호정 편집주간은 “여자의 지성을 깔보지 않으려고 애쓰고, 무책임한 바람기, 허영기를 팔지 않고도 대중이 오히려 더 흥미 있어 하고 비판정신이 깃든 여성지를 만들려고 애썼다.”라고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정말 그랬다. 『샘이 깊은 물』은 구성에서부터 다른 여성잡지와 확연히 차별되었다. 초입의 ‘요즈음의 세상형편’에서는 정치, 정책, 경제, 사회, 문화를 아우르는 이슈를 다루었다. 다달이 좌담회를 열어 당시 논란이 되는 주제에 대해 토론을 벌이고 기록한 것을 ‘말’이라는 긴 코너에 실었다. ‘평생토록 못 잊을 일’에는 노년 여성들이 구술하는 경험담을 기록했다. 한국사의 크고 작은 사건들을 관통했던 그들의 삶을 통해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되짚어봤다. 우리 농산물과 문화재를 소개하는 데도 열심이었다. 이쯤에서 생각나는 이름이 있을 것이다. 전통적 가치와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무한한 애정을 쏟았던, 『뿌리깊은 나무』의 발행인 한창기. 『샘이 깊은 물』은 『뿌리깊은 나무』가 강제 폐간된 지 4년 만에 한창기가 발행한 여성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