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May, 2018
눈물이 나올 정도는 아니라고요?
Editor. 이희조
‘그때 그 책을 읽었더라면’ 하고 느낄 때 있으시죠? 뒤돌아 후회하지 말고 미리 읽어두면 어때요?
이럴 때는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고민이라면 에디토리얼에 적힌 제 계정으로 메시지 주세요. 메일을 통해 상담해드립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아무리 봐도 상황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아 남들 쉴 때 일하는 게 당연한 사람들. 생계가 급하다 보니 불합리한 일을 당해도 제대로 항의조차 하지 못할 때가 많다. 열악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 노력하는 이도 있지만, 번번이 기회가 빗겨나가 주변 사람 마음마저 아프게 한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남 앞에서 울거나 힘들다고 투정 부리는 경우가 드물다.
“나도 그래서 한번 울어볼라고 했는데… 울기에는 뭔가 애매하더라고. 전쟁이 난 것도 아니고 고아가 된 것도 아니고….”『울기엔 좀 애매한』의 주인공 강원빈도 그런 아이다. 멋있는 이름답게 이름값 하고 살면 좋으련만 잘생긴 얼굴로 태어나지도 못했고 이혼한 남편의 도움 없이 홀로 어렵게 생계를 책임지는 어머니 밑에서 가진 것 없이 자랐다. 유일하게 만화 그리는 것이 좋아 마음 한구석으로는 미대 입시학원에 다니고 싶지만 학원비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형편인 것을 너무도 잘 안다. 여차여차하여 학원비는 마련했다 쳐도 대학 가 낼 등록금은 있냐며 학원 선생 태섭이 추궁한다. 한 손으론 머리를 긁고 얼굴은 실실 웃으며 원빈은 이렇게 대답한다.
“어떻게든 되겠죠.”
그런 원빈에게 태섭은 그 ‘어떻게든’의 표본을 보여주겠다며 교실을 향해 ‘야, 어떻게든!’이라고 누군가 부른다. 구석에 앉아있던 학원생 은수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든다. 은수는 작년 미대, 그것도 상위권 대학에 붙었지만, 등록 마감 3일 전까지도 등록금을 구하지 못하고 원빈처럼 “어떻게든 되겠죠” 하더니 결국 학원에서 재수하고 있다.
은수의 상황은 원빈보다 조금 더 우울하다. 만화가의 꿈을 위해 지방에서 상경한 은수는 낮에는 학원에서 그림 그리고 밤에는 술집에서 아르바이트한다. 어렵게 매달 생활비를 벌지만, 그마저도 고향 집의 ‘급한 일’을 해결하는 데 쓰일 때가 많다. 대학 안 가면 만화 못 그리는 것도 아니잖냐며 집에 보탬이 되라는 동생의 말에 흔들리기도 하지만, 한번 내려가면 다시는 못 올라올 것 같은 막연한 예감에 쉽게 서울 생활을 접지 못한다. 그런 은수를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닌 동생은 자기는 꿈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말한다.
단순히 흙수저로 태어난 것을 원망하기에는 원빈과 은수의 삶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천민자본주의며 노동자 연대며 연신 떠들어대며 정의로운 척하던 헌책방 사장은 상황이 불리해지니 아르바이트생 원빈의 월급을 떼먹으려 한다. 입시학원 원장은 공모전에 제출할 학생 그림을 선생들에게 대신 그리게 시킨다. 선생들 또한 다른 원생들을 속이고 부잣집 학생의 포트폴리오를 가짜로 꾸미는 일에 가담한다.
문제는 이거다. 울거나 웃는 게 아니라 화를 내고 싶어도 누구에게 화를 내야 하는지조차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전쟁이 나거나 독재정권이 건재했을 때는 화를 낼 대상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게 다 천민자본주의 탓인지, 못된 고용주 탓인지, 나의 부족한 처세 혹은 실력 탓인지 분명하지 않다. 적이 없다고 봐야 할지, 모든 게 다 적이라고 봐야 할지 도통 모르겠다. 그래서 원빈과 은수, 그리고 심지어 학원 선생들에게도 삶이란 “목놓아 울 만큼 극단적인 것은 아니지만 무엇 때문에 슬픈지 모를 만큼 복합적이다”.
술집 진상 손님들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어, 좋아한다는 친구의 고백에도 기뻐할 체력이나 마음의 여유가 없는 은수. 그는 그렇게 몇 년씩이나 좋아했던 친구를 그냥 떠나보낸다. 그런 순간에도 그가 느끼는 감정은 오로지 피곤함, 그뿐이다.
이 세상 피곤한 삶을 살고 있는 모두에게, 눈물이 나올 정도로 슬픈 책은 아니지만, 그렇기에 이 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