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ic : 이달의 화제
노동
에디터 : 박중현 김지영 김선주
노동이 삶의 단위를 만들고, 문명을 이룩하고, 세계를 창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먹고 입고 쓰는 거의 모든 것을 일로써 얻고, 일로써 인생을 설계하며, 일로써 사회에 기여한다. 때로는 신성한 것으로, 때로는 괴로운 것으로 평가받으며 삶과 세계를 지배해 온 노동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달의 토픽에서는 노동이 어떤 의미로 인류와 함께 해왔으며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 살펴본다.
“인간이 여덟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것은 일뿐이다.”
—미국 작가 윌리엄 포크너William Faulkner
‘노동’이란 무엇일까? ‘일’과는 다른 것일까? 일work이라는 단어는 고대 인도-유럽어족에서 ‘할 것’이라는 의미를 가진 ‘워그werg’라는 말에서 왔다. 이 단어는 수많은 단어와 연관된다. 어원적으로 에너지energy는 일을 가지고 있거나 하고 있음을 뜻하며, 무기력lethargy은 일하지 않는 상태, 알레르기allergy는 대립하는 일, 시너지synergy는 함께 일한다는 의미의 상승 작용을 가리킨다. 기관organ 역시 무엇인가와 함께 일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밖에도 『옥스퍼드 영어 사전』은 일work이 가진 명사적 정의 스물한 가지와 동사적 의미 마흔 가지를 열거한다. 사전을 벗어나 현실 속 일과 그 쓰임 역시 이에 못지않게 다양하지만, 결국 어원상 처음 언급한 ‘할 것’이라는 의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듯하다.
그러나 ‘일’이라고 했을 때 우리가 실질적으로 떠올리는 것은 ‘직업’ ‘돈’ ‘힘듦’ ‘하기 싫음(?)’ 같은 것들이다. 언뜻 우습고 일차원적인 것 같지만, 이들이 실은 일과 노동의 구분이나 노동의 의미 규명에 직관적인 파악을 가져다준다. 왜 그런가 하면, ‘일’이라는 말이 결국 ‘할 것’이라는 표현에 소급되듯, ‘노동’ 역시 결국 ‘생존에 필요한 하기 싫은 일’ 정도로 소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관련 도서들을 살펴본 뒤 개인적으로 떠오른 정의인데, 어쨌든 노동이 일과 구분되는 지점은 노동에 와서 일이 행해지는 맥락이 더 세부적으로 규정된다는 데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생활에서 굳이 일과 노동을 구분할 필요까지야 없지만, 특정 맥락에서 힘듦이나 재화 창출, 사회적 관계 등을 강조할 때 ‘노동’이라는 말이 좀 더 적합한 뉘앙스를 실어주는 것은 학술적으로 타당하다. 본 기사에서도 의미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노동과 일을 기계적으로 구분하지 않고 썼다.) 다시 말해 노동에는 조건이나 기준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태초에 인류가 생겨나고 진화와 문명의 발전을 거듭하며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는 ‘일하기 싫어’ 아닐까. 노동하기 좋아하는 인간은 없다. 노동에는 시대와 국경을 초월하는 가히 전 인류적 혐오가 깃들어 있다. 인간이라면 모름지기 한마음 한뜻으로 일하기 싫어한다. 사상적으로 노동의 역사를 돌아보면, 노동을 바라보는 관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무의미한 저주로 보거나 의미 있는 소명으로 보거나. 전자는 고대부터 종교개혁 이전 중세까지, 후자는 종교개혁 이후 근대를 지배해온 관점이다. 그러니 역사적으로 최소 고대부터 인류는 ‘일하기 싫어증’을 앓아왔다고 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 노동은 고통스러운 짐이나 벌과 비슷했다. 『노동과 페미니즘』 속 정고미라 저자의「노동 개념 새로 보기」에 따르면 당시 노동을 뜻했던 ‘포노스ponos’라는 말은 ‘비탄’을 뜻하는 라틴어 ‘포에나poena’에서 유래했고, 불어에서 노동을 의미한 ‘트레바일travail’은 고문 도구를 지칭하는 라틴어 ‘트리팔리움tripalium’에서 유래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지배 계급의 정치, 예술, 전쟁 등을 그 자체가 목적인 주인적 행위praxis로서 지칭한 반면, 생계를 위한 생산활동poiesis은 노예나 하는 물질적 필요악으로 여겼다. 생존을 위한 필수 노동은 노예가 하고 귀족과 같은 지배층은 이로부터 면제되어 여가를 향유할 수 있었다.
수도사와 승려의 일이 들판에서 노동하는 농부의 일이나 집에서 집안일을 하는 여인의 일보다 하나님 앞에서는 결코 우월하지 않다.
—마르틴 루터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등을 기반으로 한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면서 사회에 일어날 파급과 변화에 대해 현재까지도 활발한 논의가 펼쳐지고 있다. 초지능 기술이 인간의 노동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과연 일자리가 사라질 것인가, 사라진다면 어떤 직업이 사라지는가 등은 특히 주요한 화두다. 세계경제포럼WEF(World Economic Forum) 보고서에 따르면 앞으로 5년 내 선진국에서만 5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전망이라고 한다.
빅데이터, 인공지능, 기계학습 그리고 로봇공학의 발달로 인간은 새로운 자동화 시대의 첨단을 맞이하게 되었다. 자동화는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확산되는 중이고, 로봇이 조립라인을 떠나 당신의 지적 노동까지 떠맡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전병유, 『창작과 비평 2019 봄호』 중 「자동화, 디지털 플랫폼 그리고 노동의 미래」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기계의 노동 대체 우려는 자동화 조립 라인이 들어선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계속해서 논의되어 왔다. 기술의 발전으로 이미 다양한 분야에서 자동화 기계가 많은 노동을 대체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누군가는 4차 산업혁명이니 디지털 혁명이니 하는 것도 그동안 거쳐온 기술 혁명처럼 잠깐의 혼란에 불과할지도 모른다고, 별로 유난 떨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현재의 기술은 자동화 공장이나 PC, 스마트폰의 등장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다양하고 빠르고 폭넓게 적용되고 있다. 지금까지 인류가 겪은 그 어떤 변화와 속도나 영향력 면에서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 노동의 역사가 끝장난 것은 지금의 사회만 보더라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