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September, 2018

내 이야기 듣는 시간

Editor. 김선주

읽고 싶은 책은 날로 늘어가는데 읽는 속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느린 독자.
위시리스트의 십 분의 일도 채 못 봤는데 좋은 책은 왜 이리 많이 쏟아지냐며 행복한 불평 중.

『나를 향한, 물음표』 정다희 지음,
abcdahee

“넌 뭐 먹을래?” 결정의 순간이다. 나에게 있어 음식점에 갈 때마다 어려운 것이 있다면 역시 메뉴 선정이다. 눈은 메뉴판을 바쁘게 탐색하는데 머릿속은 붕 떠 있고, “주문 도와드릴까요?”라고 묻는 점원의 말이라도 들려오면 마음만 급해져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아무렇게나 호다닥 주문하기 일쑤다. 물론 이 정도는 아주 귀여운 축에 속한다. 살다 보면 내 마음 나도 모르겠는 순간이 어디 한두 번이겠는가. 내가 왜 이러는지, 뭘 하고 싶은 건지, 내 인생은 어떤 모습인지. 삶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는 일의 연속이다.
살면서 남의 이야기, 나를 둘러싼 세상 이야기는 흘러넘치게 많이 듣는다. 처음 만난 사람과 친해질 때도 이름이 뭔지, 나이는 몇 살인지, 어디에 살고, 무엇을 좋아하며, 또 무엇을 싫어하는지 물으며 자연스레 가까워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뭘 하고 싶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과연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자기소개서를 쓸 때 빼고 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몇 번이나 있을까.
질문을 던지기는 쉽지만 물음에 답하는 과정은 쉽지만은 않다. 우선 그 물음을 곱씹는 과정과 답을 찾는 과정, 그리고 그것을 언어로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무려 107개의 질문을 자기 자신에게 던지고 107개의 자기 모습을 솔직하게 써 내려간 책이 있다. 포토에세이 『나를 향한, 물음표』의 정다희 작가는 마치 나비가 자신의 아름다운 날개를 보지 못하듯 자신도 늘 남을 보느라 정작 나를 돌아보지 못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내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한다. ‘어디 살아요?’ ‘뭐 좋아해요?’ 같은 가벼운 질문들부터 ‘행복이 뭘까요?’ ‘스스로가 이해 안 될 때가 있나요?’ 같이 내면적 이야기를 꺼내는 질문들까지. 그녀는 수없이 만난 타인에게 던져왔던 질문들을 자신에게 묻고 또 대답한다. 그리고 그 대답들은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만큼 평범하고 내밀하다. 그래서일까, 분명 작가 혼자 자문자답하고 있음에도 읽다 보면 어느새 내가 질문받은 것처럼 나만의 답을 생각해보게 된다.
하룻밤 사이에 꽃이 피듯 하루라는 시간은 부족한 게 아니다. 지금이라도 스스로를 돌아보면 어떨까. 셀 수 없이 많았던 누군가와의 첫 만남. 그러한 순간마다 꺼내 본 질문들. 오늘은 자신에게 던져 보았으면 한다. 하루 정도는 나만을 위해 내어 줄 수 있으니까.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겠지만 자신을 되돌아볼 마음의 여유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 하루하루 주어진 것들을 해내느라 시간도 없고, 어쩌다 여유가 생기더라도 바깥의 이야기에만 빠져 시간을 보낸다. 이쯤에서 잠시 생각해본다. 나를 위해 써야 할 시간과 에너지마저 다른 곳에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타인에 대한 이해는 나에 대한 이해로부터 시작된다는 말이 있다.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지만, 작가의 말처럼 하루라도 나만을 위해 시간을 내어 준다면, 혹은 단 하나의 질문이라도 나에게 건네고 생각해본다면 어떨까. 다른 사람만 살피지 말고 나도 좀 챙기고 하면 좋잖아?
간혹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한다. 나도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나만큼 나를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전부를 다 아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아를 탐색한다는 명분으로 홀로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거나, 일기를 쓰기도 한다. 또한 사람은 계속 변한다. 사람이기에 나이를 먹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상황이 달라지면서 생각은 끊임없이 바뀌고, 모르는 것도 계속 발견될 것이다. 결국 신이 아닌 이상에야 나를 완벽히 알기란 어렵다. 그래도 계속해서 생각하고 알아가야 한다. 그 정도 준비는 하고 있어야 누군가 내게 물음표를 던졌을 때 얼렁뚱땅 얼버무릴 일도 없을 것이고, 적어도 내가 어떤 취향의 인간인지 알고 있다면 세상을 조금은 더 재미있게 살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