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December, 2015

낚일 때 낚이더라도

Editor. 유대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또는 너무 매력적으로 보여서 구매한 물건 중 많은 수는 방구석에 박혀서 대낮의 빛을 거의 못 보고 잊혀지고 버려지고 수거된다. 숙고 끝에 산 물건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유는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처럼 간단하고 명백하다. 그 물건은 당신에게 필요 없었다. 그런데 그때만 해도 그것 없이는 삶이 두 동강 날 것처럼 마음이 조급하고, 그것을 갖기만 하면 인생이 업그레이드될 것만 같았는데! 충동적으로 삶에 들여놓는 것은 어여쁜 쓰레기만이 아니다. 우리는 자주 파국이 예정된 관계에 몰두하고 진실과 먼 소문과 근거 없는 여론에 현혹당한다. 무의식에 도돌이표라도 박힌 건지 어리석은 역사는 되풀이된다. 자신의 통제력을 과신한 탓이다. 이 책들은 우리의 판단능력의 민낯과 충동이 조장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우리는 낚고낚이는 끈질긴 순환에서 발을 뺄 수 있을까.

『대중유혹의 기술』 오정호 지음
메디치

허핑턴포스트의 슬라이드 쇼에는 사람들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반면 매그넘의 사진에는 남겨지고 버려진 사람들의 얼굴이 등장한다. (…) 보는 사람들에게 전자는 공포와 분노를 주는 데 반해 후자는 슬픔을 준다. 전자는 엄청난 속도로 공유되는 반면 후자는 퍼지지 않는다. (…) 빈곤과 같은 사회현상에 대한 슬픔은 미묘하고 복합적인 감정이며 이성적인 분석을 동반해야 정당화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그래서 슬픔은 느린 감정이다.—본문 중
대중은 알기 어려운 존재다. 우매하고 선동하기 쉬운, 대략 중학생의 지식수준을 지닌 것으로 모형화되는 이 집단은 때로 예상치 못한 숭고한 일을 해내기도 하고 거대한 변화의 물결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들은 소비자, 유권자, 지지자 등 여러 역할을 수행하면서 어린 양처럼 순진하고 수동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때로 주체적이고 대단히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대중의 모순되고 복잡한 심리를 파악하기 위해 저자는 대중 유혹의 기술 중 성공적이었던 사례를 나열하고 분석을 내놓는다. 거기에 언론에 몸담으며 대중과 미디어를 관찰하고 분석한 저자 자신의 해석과 전략을 제시한다. 저자는 독자를 미디어 역사의 여러 현장으로 인도한다. 19세기 파리의 시체 공시소에는 하루 평균 2만 명의 구경꾼이 몰렸다. 당대의 신문들은 이를 소재로 기사와 시각자료를 생산해내며 도시생활자의 공포와 흥분을 자양분 삼아 성장했다. 한편, 1929년 뉴욕에서는 여성권리 신장을 위한 부활절 담배 행진이 열렸다. 아름다운 여성들이 거리를 행진하며 흡연의 자유가 곧 여성해방이라는 메시지를 전파한 이 행사는 아메리칸 토바코사의 의뢰를 받은 전설적인 전략가 에드워드 버네이즈의 걸작이었다. 레드불이 올해 개최한 치바현 에어 레이스도 일본인의 뿌리 깊은 욕망을 건드렸다. 레드불의 비행기가 구름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냈을 때 일본인들은 70년 전 자국의 제로센 전투기의 영광을 거기에 투사했다. 여러 시대와 사회를 아우르는 풍부한 사례를 읽는 사이 우리는 소비사회 속 대중의 욕망이 작동하고 조장되는 원리에 다가간다. 누구든 ‘대중’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으려 들지만 바로 거기서 우리는 개개인 본연의 더 솔직한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꿀잼 경제학』 포포 포로덕션 지음
매일경제신문사

‘왜 나는 저축을 못 할까’ ‘왜 홈쇼핑에서 파는 물품은 다섯 가지 색일까’ ‘왜 우리는 가는 식당만 갈까’. 『꿀잼 경제학』은 이같이 궁금하지만 어디다 물어보기도 뭐하고 논쟁을 벌여봐도 속 시원히 알 수 없는 의문들에 답을 제시하는 행동경제학의 맛보기 같은 책이다. 행동경제학은 심리학과 밀접한 학문으로 사람들이 경제 활동을 할 때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연구하는 분야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인간이 그다지 합리적이거나 경제적이지 못하다고 전제한다. 인간의 정보 수집 도구가 되는 감각조차 불완전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신이 절대 틀리지 않는다는 ‘우월의 착각’에 빠져 있다. 그래서 편향된 판단을 내리거나 오류를 범한다. 그것을 ‘휴리스틱에 의한 바이어스’라고 한다. 이 책은 다양한 사례를 들어 우리가 경제 활동에서 범하는 바이어스의 종류를 세부적이고 구체적으로 나열한다. 여기서 소개하는 바이어스는 비단 개인의 경제 활동으로만 그 영향 범위가 국한되지 않는다. 이 책에서 분석하는 비합리적 사고와 시야의 편협함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관찰되고 확장, 적용된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확증 바이어스’, 승세를 잡은 편을 지지하고 싶어지는 ‘밴드왜건 효과’, 복잡하게 비교를 해야 할 바에는 선택을 포기해버리는 ‘디폴트 선호 경향’, 변화가 가져오는 위화감으로 인한 ‘현상유지 바이어스’ 등은 우리가 재화나 서비스를 구매할 때도 나타나지만, 선거에서 후보를 선택하고, 타인과 관계를 맺고 자기계발서에 중독되고 습관을 형성하는 데도 어김없이 나타난다. 이를테면 이렇다. 정책이나 이념을 굳이 지지하지 않는 정치 후보라 하더라도 승세를 잡았다면 자신의 표의 유효성을 지키기 위해 그에게 표를 던지거나(밴드왜건 효과), 이성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는 사람은 상대가 다양한 모습을 보여줌에도 자신의 믿음에 부합하는 면을 발견하면 편견을 더 공고히 한다(확증 바이어스). 생활과 밀접하면서도 적용 범위가 무궁무진하다는 점이 행동경제학을 매력적인 학문으로 만드는 것인 듯하다. 어떻게 보면 삶이 곧 경제 활동이라는 해석에 이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행동경제학을 통해 자신의 불완전함을 직시하는 것으로 우리는 나아질 수 있을까? 이것도 ‘우월의 착각’의 일종은 아닐까.

『충동의 배후』 데이비드 루이스
지음세종연구원

알람이 울리는 시각, 바로 이불을 걷어차고 나와 샤워를 할 건지 말 건지, 계단을 아니면 만원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것인지, 밀당 중인 상대에게 바로 회신할 건지 등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가지의 결정을 해야 한다. 이 중에는 당장 몇 시간 후를 결정하는 것도 있지만 향후 몇십 년을 좌우하는 것도 있다. 그런데 우리가 내리는 많은 결정은 과연 이성과 자유의지의 산물일까. 『충동의 배후』의 저자는 이 의문에 부정적이다. 그는 우리의 의사결정 과정에 이성보다 충동이 훨씬 많은 부분을 관여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그 배후에 있는 무의식을 탐구한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의 결정은 대부분 생물학적 조건에 의해 지배당할 뿐 아니라 무의식적이다. 무의식조차 생성 과정에서 불완전한 감각을 통해 받아들인 정보에 의존한 결과다. 그것은 우리의 머릿속에서 고정되고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뇌가 새로운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도 자신이 속한 특정한 문화가 형성한 규칙들에 의해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조건과 반사로 복잡한 행동을 설명한다는 점에서 행동심리학자 존 B. 왓슨의 기계론적 입장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심리학사상 가장 유명하고 가장 많은 반발이 빗발쳤던 선언을 남겼다. “나에게 열두 명의 아기를 준다면 아이들의 재능, 취향, 성향, 능력, 인종과 관계없이 내가 정하는 대로 의사, 변호사, 예술가, 상인, 거지, 도둑으로 키울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우리가 매 순간 내리는 결정이나 미래, 변화에 대한 가능성이나 의지조차 이미 전 단계에서 밑그림이 존재해서 자유의지가 끼어들 틈이 없다고 여긴 걸까. 저자는 왓슨 같은 하드코어 행동주의자는 아니지만, 결론에서 자유의지의 존재를 긍정하지는 않는다. 대신 사회심리학자 대니얼 웨그너의 “냉정하게 이야기해서 그것은 (자유의지) 환상이다”라는 말을 인용한다. 그리고 그것이 사회를 유지하고, 개인의 긍정적인 동기와 행태에 강한 영향을 미치는 한 요소라는 사실을 끝으로 완곡하게 책을 마친다. 역설적이게도 자유의지는 그것이 허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비로소 출발하는 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