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 인터뷰
나와 타인을 바꾸는 글쓰기,
유시민
에디터: 유대란 / 사진: 세바스티안 슈티제 © Sebastian Schutyser
복잡하고 화려한 글도 아름답지만 머릿속에 뚜렷한 공명을 남기는 건 짧고 명쾌한 글이다. 그런 글은 맑고 명료한 생각을 담고 있다. 명료하게 생각하고 명료한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유시민에게 들었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출간을 앞두고 그의 작업실 ‘자유인의 서재’를 찾았다.
A. 글 쓰는 일로 돌아온 지 이제 2년 됐네요. 원래 살고 싶은 대로 살고 있어서 좋아요. 사는 건 약간 외로워야 돼요. 외로워야 관계가 귀하게 느껴져요. 정치는 1년 365일, 24시간 중 잘 때 빼고는 다 관계로 맺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버겁고 짐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죠. 지금은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고 아주 가끔씩 사람들과 어울리기 때문에 좋아요. 그런 점이 가장 큰 차이라고 봐야죠. 지금 사는 스타일이 원래 원했던 거고, 괜찮은 것 같아요. 남들처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해요. 지난 4개월 정도는 집필에만 매진했어요.
A. 몇 년 전 어느 고등학교에서 우연히 글쓰기에 대한 강의를 한 적이 있어요. 정치할 당시 후원해주셨던 분들의 자녀들한테 이런 걸 얘기해주면 좋지 않을까 해서 시작했어요. 공개 강좌로 하자고 해서 그렇게 했는데 강연에 올 수 있는 인원은 숫자가 제한되어 있고 주어진 두세 시간으로는 충분히 이야기하기가 어려웠어요. 작년에 지방에 가서 일곱 번 정도 강연을 했는데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A. 글이라는 게 소통수단인데, 일단 읽어서 뜻을 알기 어려우면 못난 글이에요. 그리고 말은 일종의 음악이기도 하거든요. 리듬이 있고 멜로디가 있어요. 말을 먼저 하고 문자를 만들고 글을 쓰게 된 거기 때문에 말이 기본이거든요. 소리를 내서 읽었을 때 듣기 안 좋으면 안 좋은 글이에요. 안 좋은 글은 뜻을 알기 어렵고, 듣기에도 어렵고, 소리도 흉해요. 그런 공통된 특성이 있어요. 그러니까 읽으면 무슨 말인지 쉽게 알 수 있고, 소리도 잘 들어오는 그런 글이 좋은 글이에요. 그러나 절대적으로 어떤 글이 좋은 글이냐고 물으면 대답하기 어려워요. 다 달라요. 최근에 읽은 책 중에는, 문장의 아름다움을 떠나서 엘렌 튜링의 전기 『이미테이션 게임』이 좋았어요. 전기는 보통 산문 작가들이 쓰거나 전업 작가들이 대필을 하는데 수리물리학자가 과학자의 전기를 썼어요. 과학, 수학적 지식, 과학의 역사, 개인의 생애가 뒤섞여 있는데 유럽 지식인의 인문학적 토양이랄까, 그런 게 묻어났어요. 이렇게 어려운 책도 이렇게 쓸 수 있구나 생각했어요. 과학자의 전기는 과학자라야 쓸 수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색다른 경험이었어요.
A. 생각이 명료하면 명료한 글을 쓸 수 있는데 언어적으로 명료해야 생각이 명료해져요. 언어라는 게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생각하는 도구예요. 서로가 서로를 규정해요. 평소에 생각 자체를 단문으로 하는 습관이 좋은 것 같아요. 이거 뭐지? 이건 이거야. 가능한 한 그렇게 생각해야 머릿속에서 분명해져요. 분명하게 생각해놓고 복잡하게 쓰는 건 가능한데 생각이 복잡하면 분명하게도 못 써요. 단문으로 쓸 수 있는 사람은 복문도 쓸 수 있는데 애초 복문으로 생각하면 단문을 못 쓰거든요. 사실 방법이란 건 없고, 계속 책을 읽고 생각하다 보면 자기만의 디렉토리가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머릿속이 굉장히 큰 용량을 가진 저장소라고 보면 필요한 정보를 꺼낼 때 간편하게 꺼낼 수 있어야 해요. 우리 머릿속이 명료하게 정리되어 있다는 건 디렉토리가 잘 만들어져 있다는 거예요. 하나를 열면 디렉토리가 쭉 나오고 자기가 관심 있는 하부 디렉토리로 들어가서 열고 또 열면 최종적으로 찾는 정보까지 들어갈 수 있고, 그걸 빨리 불러낼 수 있어야 해요. 머릿속에 일종의 칸막이가 생기는 건데 자기가 만들어가는 거 같아요. 결국은 많이 읽고 생각하고 표현해봐야 해요. 이렇게 하면 조금씩 디렉토리의 크기라든가 복잡성이 달라지는 거죠. 자꾸 하다 보면 돼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