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April, 2020
꿈틀리
Editor.강지이
꿈틀리 인생학교 오연호 대표의 전작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를 읽을 때만 하더라도, 사실 나는 『오마이뉴스』라는 진보 언론의 대표가 갑자기 교육과 행복, 복지에 대해 고민한다는 글이 낯설기도 했다. 그는 태생적으로 극진보를 부르짖던 월간 『말』의 기자가 아니었던가. 햄릿과 안데르센 동화 속의 나라 덴마크를 여러번 드나들면서 그의 진보성은 퇴색하고 정치적 목소리를 내려놓게 되었을까? 그는 덴마크의 복지와 행복을 이야기하면서 “우리도 그들, 덴마크인처럼”이라고 쓰인 카드를 들고 나섰고 이후 한국 출판계는 꽤 여러 번 덴마크식 복지와 북유럽의 행복론을 이야기해 왔다.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는 전작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의 흥행에 이어 다시 베스트 셀러의 반열에 오른 에세이다. 그는 오십이 넘어서야 사랑을 말한다. 아, 그래, 사랑. 이것이야말로 진흙탕 세상의 진주처럼 빛나는 단어다. 가족을 구성하는 핵심 주제임에도 우리는 이 단어와 너무 동떨어진 채 살아가고 있다. 작가 또한 이런 세상에 대한 안타까움을 이야기한다. 청년기의 그는 민주의를 이야기했을 텐데, 중년기의 그는 행복과 사랑의 가치를 이야기한다. 이제 우리의 미래는 진정한 행복과 사랑의 추구에 달려있다는 새로운 덴마크식 철학이 돋보인다.
덴마크 철학자 스벤 브링크만Svend Brinkmann의 책들을 통해 그들의 철학과 사상을 살펴보자. 브링크만은 그의 철학서 『철학이 필요한 순간』에서 오래된 철학자들로부터 현대 철학자들의 생각을 쉽게 풀어 설명한다. 브링크만이 쓴 철학서가 교육 베스트셀러가 되는 덴마크와 달리 우리나라 교육의 핵심은 단연 ‘입시’다. 오연호 대표는 덴마크와 우리나라의 다양한 차이점 중에서 ‘교육 개선’을 가장 먼저 말한다. 우리의 교육은 성적으로 줄 세우기를 하고 내면의 행복보다 외면의 성공을 중요하게 여긴다. 무엇인지도 모르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레밍처럼 너도나도 상위권 대학, 남들이 보기에 좋아 보이는 직업을 위해 열심히 달린다. 다양성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오죽하면 공부 좀 한다는 학생들은 다 의대를 가고 싶어 해서 ‘의대쏠림’이라는 말까지 나왔겠나.
작가는 고3 수험생들의 수능 성적표가 나오는 날 강의를 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난감해한다. 과연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작가는 ‘인생은 살아가는 내내 성장기다. 내 안에는 또 다른 내가 있다’ 라는 덴마크인들의 철학을 소개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리나라의 학생들은 시험 성적으로, 대학 입시로 인생이 판가름 나는 듯한 기분 속에 늘 산다. 그들에게 인생은 살아가는 내내 성장기니까 지금 좀 덜 잘해도 괜찮다고 진심으로 말해주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다. 하지만 그런 말들이 어렵다.
우리나라와 덴마크의 교육제도가 크게 차이를 보이는 예로 대학 기숙사생 선발 기준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숙사에 들어가려면 성적이 우수하고 품행이 바른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나 덴마크의 경우는 다르다. 그들은 대학 입학 원서와 마찬가지로 기숙사 입사 원서에도 자기소개서를 쓴다. 거기에 강조되는 내용은 내가 이 기숙사라는 작은 사회에 얼마나 기여를 할 수 있느냐다. 어떤 학생은 청소를 잘하니 기숙사 로비 환경정화 활동을 하겠다, 또 누군가는 한 달에 한 번 악기 연주를 멋있게 해 친구들을 즐겁게 해 줄 것이다 등 자신만의 장점을 어필 한다. 이를 통해 기숙사에 적합한 학생에게 방을 준다.
교육 이야기 외에 책에서 또 하나 흥미로웠던 것은 ‘열린 감옥’ 에 대한 이야기다. 덴마크에서는 죄수를 ‘죄를 지었으니 사회로부터 격리되어야 할 사람’으로 인식하지 않고, 비록 잘못을 저질렀으나 ‘교화의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강력 범죄가 아닌 이상 열린 감옥에 머무른다. 사회의 일원으로 존재하면서도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바른길을 탐색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들은 일을 하고 돈도 벌고 단체 생활도 해나 가면서 교정 프로그램에 참여해 스스로 반성한다. 우리나라에서 죄수는 일상생활에서 분리된 채 시간을 보내다 보니 아무리 교화되었다 해도 외부에 나와 직장을 얻거나 평범한 생활을 하기 힘든 것과는 크게 대조적이다. 저자가 인용한 서정홍 시인의 시는 우리나라 어른들이 지닌 비뚤어지고 못난 가치관을 돌아보게 한다.
도둑이나 사기꾼보다
수천수만 배 더 나쁜 게 있다면 가난한 이들과 땀 흘려 일하고 정직하게 살라 가르치지 않고 공부 열심히 해서 편안하게 살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아이들한테 -서정홍, 「못난 꿈이 한데 모여」, 『못난이 철학 1』 중
우리 교육의 중심은 이런 잘못된 생각들이 주류를 이룬다. 땀 흘려 일하고 정직하게 살라는 것이 아니라 공부해서 편안히 살라고 가르친다. 그 가르침이 나쁘단 소리가 아니다. 최고 선이 있는데 차선이 더 좋다고 가르치는 현실이 우리 아이들을 힘들게 한다. 그러면서도 학교에서는 ‘윤리와 사상’을 가르치고 ‘도덕’을 말한다.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판별할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모두 참이니 이것을 달달 외우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의 학교는 재미가 없다. 성공을 위해 지금 힘든 것은 참으라고만 하지 지금 행복하라고 하지 않는다. 슬프게도.
내 관점에서 지극히 이상주의자인 저자가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 꿈틀거리되 서로의 차이와 조건을 인정하고 포용하며 유연하게 더불어 함께 가자. 내일은 반드시 온다. 하지만 그 내일은 그냥 오지 않는다. 내일은 오늘의 우리가 만들어 간다.”
엄마들은 어떠한 교육 방식이 내 아이에게 행복을 가져다줄까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과연 교육 관계자들도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우리나라에만 있을 법한 단어인 ‘입시지옥’ 문제를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한곳을 향해 자신의 개성 따위는 잊은 채 달려가는 아이들이 계속 생겨날 것이다. 한동안 핀란드의 교육법을 배우러 가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던 적도 있었다. 그때 핀란드 교육계 인사들이 물었다고 한다. 왜 한국 사람들은 3년째 똑같은 질문을 계속하냐고, 우리의 방법을 한 번 실현 해 보았냐고 남의 떡만 부러워할 뿐 과연 우리는 변화를 얼마나 시도해 보았는지 고민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