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도 좋지만 살고 봐야지. 그래서 2주에 하루쯤은 해피데이를 정해서 통밀 케이크도 만들어 먹고, (…) 한 달에 한 번은 라면도 나눠 먹었다. 저녁을 안 먹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삼시 세끼는 꼭 챙겨 먹었다. (…) 보름이 지나자 4kg이 빠졌고, 한 달 후에는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두 달이 지나자 허리벨트는 4칸이 줄었고 체중은 무려 9kg이나 덜어낼 수 있었다.”
책에서 발췌한 글인지 모르고 보면 무슨 다이어트를 했느냐고 물을 사람이 여럿 있지 않을까. 나는 김옥란을 그의 두 번째 책 『애들 먹일 좋은 거』를 통해 처음 만났다. 아이들이 다 커서 집을 떠나고 나면 밥을 먹이고 싶어도 그러지 못할 테니, 자식에게 좋은 것만 먹이고 싶었다는 그의 말을 보며 유학 시절 엄마가 보낸 편지가 떠오르기도 했다. 스스로를 ‘꿈꾸는 할멈’이라고 부르는 김옥란은 30년 넘게 가정 요리를 가르친 대가다. 젊은 엄마들과 소통하고자 블로그를 창구로 활용할 줄 아는 신세대 할머니이기도 하다. 그런데 평생 가족에게 좋은 거, 맛있는 거 먹일 고민만 하며 살아온, 유쾌한 위로를 주는 할머니가 다이어트라니? 그가 갑자기 다이어트에 눈을 돌린 이유는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고 ‘잘 팔릴만한’ 레시피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엄마로서 아이들을 위한 ‘평생 레시피’를 가꾸었듯, 그의 세 번째 책 『오늘도 배부른 다이어트』는 “40년 넘는 동안 서로 예뻐했다, 안 예뻐했다 하면서 함께 사는 짝꿍 할아범”의 혈압과 건강 때문에 시작됐다.
내 조부모님은 생전에 두 분 모두 여기저기 안 좋은 곳이 많아 같은 병원 안에서도 여러 과를 돌아야 했다. 큰며느리였던 엄마는 두 분을 병원에 모시고 다니는 일로 일주일을 다 보냈고 챙겨드려야 하는 약도 한 뭉치라 늘 걱정이 많았다. 그래서 건강 관리는 젊었을 때부터 해야 하는 것이라며 어떤 명약도 이미 병들면 소용이 없으니 음식과 운동으로 평생 관리해야 한다고 내게 신신당부하곤 했다. 말뿐이 아니라, ‘우리 집 식탁에 명의가 있고 약국이 있다’며 집에서 먹는 식사에 온 신경을 쏟았다. 그런데 나이가 원수인지, 칠순이 넘도록 건강에 문제가 없던 아버지가 최근 심부전 진단을 받았다. 엄마는 이전보다 더욱 철저한 식단 관리에 착수했다. 아버지 먹거리에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는 이유를 물으니 ‘40년 넘게 인생을 함께한 반쪽인데 남은 인생 더 건강하고 즐겁게 살아야 하기 때문’이란다. 나 몰래 둘이 만나서 말을 맞춘 듯, 꿈꾸는 할멈과 꼭 같은 말이다.
“먹을 만큼 먹은 나이에, 이 나이에, 그래도 무언가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따라 애쓰며 가고 있다는 것. 이것이 참 좋다. 살아있는 기분, 이 절절한 기분이 정말 좋은 거다.”
식단을 바꾼 뒤로 할아범은 전보다 자주 웃는다. 식이요법으로 몸도 가벼워지고 혈압 조절도 비교적 수월해지면서 근심도 좀 가벼워졌는가 보다. 이 와중에 김옥란은 늦은 나이에도 풀 죽지 않고 목표 달성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그 과정에서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이 행복하더라고 말한다. 그의 고백처럼 이 책은 절대로 할아범의 다이어트 성공기를 담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김옥란은 혹시나 다이어트에 특효인 식이요법을 기대하는 젊은 독자들에게 다른 용기를 주려 한다. 자신들과 같은 노인네들도 무리 없이 지속하고 있으니, 연배로 보면 한참 어린 독자들이 꿈꾸는 할멈의 식단을 실천하기란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말이다. 그는 우리에게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천천히 따라 하다 보면 행복하게 가벼워질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김옥란은 젊은이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 그는 씩씩하게 잘 따라 할 만한 사람들보다는 무언가 속상해하거나 풀 죽은 이들의 마음을 알아채고 슬그머니 기운을 북돋아 준다. 천천히 목표를 세워 실천하다 보면 어느 날 문득 기쁨과 보람이 차오르고, 나아가 세상살이도 그리 어렵지 않게 느껴질 거라는 응원과 함께. 꿈꾸는 할멈의 레시피와 메시지 하나하나에는 그의 상차림처럼 정성이 배어 있지 않은 데가 없다. 그 응원에 고마운 마음이 듦과 동시에 지금껏 남편과 자식 먹을 음식에 갖은 정성을 기울인 세상의 어머니들에게 이전보다 훨씬 더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우리가 당연한 듯 먹던 집밥은 어머니들이 “숟가락 들 힘도 없는 날만 빼고” 있는 정성, 없는 정성을 모두 들여차린 것이니 말이다.
“어때요? 할 만해요? 몇 가지나 해 먹었어요? 채소 많이 먹어서 토끼가 된 기분이려나. 약속은 잘 지키게 되던지 묻고 싶었어요. 다이어트는 약속이니까. 다른 사람 아니고 나랑의 약속. 그러니 포기하지 말고 계속 해 봐요. 나 정말 잘한다, 칭찬하고 싶을 때까지. 뭔가 해냈다, 싶을 때까지! 이제 음식 얘기는 그만해도 되겠어요. 여기 있는 것들만 돌려 가며 해 먹어도 충분할걸.”
눈시울이 시큰할 정도로 뜨거운 사랑이 담긴 이 한 권의 책은 엄마와 모처럼 오랜 시간 이야기 나누는 듯한 위로를 안겨주고, 메말라가던 연약한 자아에 힘을 실어 주며, 때론 깐깐한 영양사처럼 균형 잡힌 식단 계획을 세우게 도와준다. 당분간 급하게 의사를 만날 일은 없을 것 같은 든든한 기분은 덤이다. 꿈꾸는 할멈 김옥란을 무언가에 비유하자면 당근케이크가 떠오른다. 할멈이 독자들에게 마무리 선물이라며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칭찬해주고 싶은 날에 만들어 먹으라고 소개한 레시피가 ‘당근케이크’이기도 하다. 내가 괜찮은 사람, 좋은 사람, 멋진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드는 세상 달콤하고 따뜻한 선물에 벌써 배가 부른 건 기분 탓일까.
“마르고 닳도록 계속해서 쓰는 평생의 살림살이가 있지요. 다이어트도 그래요. 평생 하는 거라우. 넘치면 조절하고, 잘하고 있을 때는 실컷 먹여 주기도! 그러고 사는 거지. 이 책 속의 음식들을 평생 써먹어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