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 인터뷰
기발하고 날카로워질 때까지,
소설가 김연수
에디터: 유대란, 사진: 문학동네 제공
지적 소설의 한 장을 열었다는 평에서부터 ‘우리 시대의 가장 지성적인 작가’라는 수식어가 붙는 김연수 작가의 첫 소설집 『스무 살』이 15년 만에 다시 출간되었다. 수록된 총 9편의 단편은 현실에 밀착한 이야기를 서정적인 문체로 풀어놓는가 하면 이를 뒤엎듯 환상과 긴장감으로 채워진 세계를 펼치며 다양한 기법을 실험했던 20여 년 전 작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은 확신과 불안 사이에서 소설세계를 끊임없이 갱신하며 글쓰기로 자신을 증명해온 현재의 작가를 예감하게 하는 것이었다. 일본에 머물며 집필 중인 작가에게 근황을 물었다.
별 소감은 없습니다. 이른 나이에 얼떨결에 등단했고, 문학에는 끌리면서도 직접 작품을 쓰는 일은 아직 두려워하던 시기에 몇 편의 단편소설를 썼는데, 그게 바로 『스무 살』에 실린 작품들입니다. 소설들을 묶어 출판사에 보낼 때만 해도 이 책이 저의 마지막 책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독자들이 이 책의 재출간을 기다린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래 봐야 많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번에 다시 펴내면서 소설들을 훑어보니 지금도 남아 있는 제 모습도 있고, 이제는 찾을 수 없는 제 모습도 있어서 흥미로웠습니다. 그 정도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요?
‘사랑이여, 영원하라’는 1995년쯤 써서 잡지에 발표한 것이고요, ‘두려움의 기원’은 아마도 1997년쯤 썼는데,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아직까지 소설에 대해서 배우던 시절이라 마음에 들지 않아 작품집에는 묶지 않은 작품들이 좀 있습니다.
도저히 쓸 수 없다고 생각했던 소설이 있습니다. 그런 소설을 쓰겠답시고 공부도 하고, 팔자에도 없는 여행도 하지만, 막상 책상에 앉으면 한 줄도 쓸 수 없습니다. 이대로 소설가 인생을 포기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순간도 지나고 아무런 희망도 없이 그저 내가 쓸 수 있는 만큼만 쓰자고 마음먹고는 써내려가다가 드디어 다 썼다고 생각하는 새벽이 찾아옵니다. 그때가 소설가로서 가장 좋은 순간이지만, 그 가장 좋은 순간은 아직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다 쓴 소설을 프린트한 뒤에 책상에 올려놓고 냉장고에서 차가운 맥주를 꺼내 마십니다. 단숨에 한 캔을 다 마시고 나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만족감이 몰려드는데, 그때가 가장 좋은 순간입니다.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되고 싶어서 소설가가 된 게 아니라서 앞으로도 후회는 못할 것 같습니다.
일과는 들쑥날쑥입니다. 궁금하신 마음은 알겠지만, 그때그때마다 일과가 달라지니 말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싶기도 합니다. 소설을 쓰는 단계마다 일과가 다릅니다. 소설을 준비할 때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납니다. 하지만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 소설이 잘 써지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따라서 잠자는 시간이 달라집니다. 대개는 잘 써지지 않기 때문에 늦게까지 깨어 있습니다. 길게 보면 완성된 문장은 심야와 새벽에 많이 나옵니다. 물론 낮에도 뭘 쓰긴 합니다만, 그건 마중물과 같은 문장들입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글은 제 작업실에서만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