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마음은 문의 연결고리로 이루어져 있다. 매 순간의 선택은 여러 개 중 하나의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한 번에 모든 문이 열리기를 바라는 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 하나의 열쇠로 이 모든 문이 열릴 수 있다면 그 열쇠는 사랑일 것이다.”
수많은 연애가 실패하는 이유에 관한 내 나름의 이론이 있다. 평범한 두 사람의 연애가 깨졌을 때, 그 원인이 한 사람에게만 있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어긋난 연애를 두고 우리는 상대를 탓하기 마련이지만, 그 책임 소재가 자신에게도 없지 않다는 뜻이다. 악한 심보를 갖고 연인을 의도적으로 괴롭혔을 리는 없겠지만, 낮은 자존감과 불안한 자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다른 사람과의 친밀한 관계에 뛰어들면 일련의 문제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면서 당당하고 행복한 연애를 하고 싶은 이들에게 어느 사랑 상점에의 방문을 권하고 싶다.
“그녀는 여러 점의 자화상을 통해서 ‘나는 이제 손을 되찾았어요’라고 아름다운 고백을 한다. 그림을 그리기 전에 그녀는 손이 없었다. 그 손은 창작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직접적인 신체이며 영혼을 어루만지는 가장 예민한 기관이다. 다시 손이 생겨 제 상처를 어루만지고 어떤 이야기도 쓱쓱 그려내는 건강한 손에 대한 이야기를 자화상을 통해 전한다. (…) 작고 맑은 그녀의 작업실은 변호사 사무실이기도 하다. 사무실 한 켠에서 오일파스텔을 늘어놓고 작업을 이어가듯, 무거운 사정을 들고 변호사인 그녀에게 찾아오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따스한 드로잉을 하게 될 거라 믿는다.”
『재즈민의 사랑 상점』의 저자 배민신은 변호사이자 화가이며, 배민신인 동시에 재즈민이기도 한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다. ‘재즈민’은 즉흥적인 변주가 가능하며 규칙이 없는 것 같지만 자유로운 조화가 있는 재즈처럼,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는 예술가로 살고 싶다는 바람을 담아 그가 스스로에게 붙인 이름이다. 성장통을 앓던 스무 살, 어떻게 감정을 표현해야 할지 몰라 답답한 마음을 안고 찾은 화실에서 운명적으로 그림과 만났다. “깊고 깊던 겨울의 우울감을 이겨내기 위해 집어 든 연필이 나를 그림을 그리는 작가로 만들었다”라는 그의 말처럼, 오직 그림을 그릴 때 자유로워졌고, 묵은 감정들을 해소할 수 있었다. 그림을 그리며 그의 손은 다시 태어났다. 말하는 손이자 표현하는 손으로.
초록빛으로 물들어있는 표지 속 환한 표정의 주인공은 배민신이 그린 자기 자신이다. 활짝 웃는 얼굴에 이끌려 책 속 그림들을 넘겨보았다. 그 안에는 세계를 여행하며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얼굴, 오랫동안 곁에 머물렀던 고양이, 이들과 우정과 사랑을 나누었던 감정과 흔적이 가득했다. 그림들을 보고 있자니 늘 사랑에 빠져 있는 한 사람을 발견한 것 같다. 언제든 진심을 다해 사랑할 수 있는 자신감과 여유가 엿보인다. 안전한 삶에 안주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삶과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그의 예술가이자 여행가로서의 면모가 매 페이지마다 뜨겁게 실려있다. 나는 더욱 궁금해졌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사랑이 가득한 사람으로 만들었을까?
“나 자신의 자화상으로부터 시작하여 사랑하고 애정을 갖게 된 대상을 그리기 시작했다. 영혼의 일부, 영혼과 교감하는 얼굴을 달리한 존재들과의 만남은 순수한 기쁨과 생생한 환희로 가득 차 있다. 축복의 순간은 언제나 다채롭고 생생하다. 고혹적인 생명력과 사랑이 가득한 자연, 동물, 사람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우주를 화폭에 재생시키는 일. (…) 우리가 사랑 가득한 빛으로 가득 채워진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그런 순간들 덕에 오늘도 살아간다.”
무한히 쏟아져 나올 것만 같은 열정과 에너지는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과 관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자화상을 그리려면 그동안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던 자신의 실존을 마주해야 한다. 처음엔 낯설고 어색하기 마련인 이 경험을 통해 자신에게 머물렀던 삶의 흔적과 내밀한 감정들을 포착하고, 자신도 미처 몰랐던 모습을 서서히 발견하게 된다. 마치 누군가에게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처럼 말이다. 사랑을 시작하면 모든 감각의 초점이 상대방에게만 향하기 쉽다. 그러나 연애뿐만 아니라 어떤 인간관계에서든지 건강한 자존감과 행복한 자아가 뒷받침되어야 단단한 연결을 이룰 수 있다. 사랑에 휩쓸려 중심을 잃고 결국은 상처를 주고받는 이들에게 재즈민의 자화상은 진정한 사랑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는 듯하다.
“사랑에 쉽게 빠지고 사랑하는 이를 몹시도 열렬히 그리워하는 건 ‘나’라는 생명의 천성이다. 사랑이 시작될 때의 짜릿함, 그를 나의 세계로 맞이할 때의 강렬한 기쁨만큼 그의 세계로 내 사랑을 다시 돌려 보내줘야 할 때의 고통은 견디기 힘들 정도의 상처다. 이토록 처절한 아픔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멈춘 적 없다. 새 생명을 잉태하듯 온 우주가 격렬히 내 안으로 들어온다. 너를 만나 나는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엄격한 법의 시선으로 임해야 하는 변호사라는 직업과 다채로운 감정을 감각적으로 쏟아내는 예술가라는 커다란 간극을 그가 흔들림 없이 유지하는 것 또한 자신에 대한 단단한 긍정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덕분에 상처와 아픔에도 아랑곳 않고 사랑을 멈추지 않을 수 있는 것일 테다. 사랑에 지쳐 다시 시작하기가 겁나는 이들이라면 이 멋진 사람의 에너지를 받아보기를 바란다. 재즈민은 자신이 가진 사랑을 아낌없이 나눠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