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d but New: 오래된 그러나 새로운
근대인의 매뉴얼,
가정백과사전
에디터:유대란, 사진:신형덕
분량은 2,000쪽쯤 되고, 방문 약속은 어떻게 잡고, 친정에 편지를 보낼 땐 어떤 문장을 써야 하는지, 심지어 첫날밤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알려주는 책이 있었다. ‘이런 게 있게? 없게?’라는 퀴즈를 내고 싶을 정도로 우리로서는 지나치게 시시콜콜하거나 사적인 부분에 대해 가르치고 참견하는 책이었다. 어린 시절 선반에 한 권쯤 꽂혀 있었을 법한 책이지만, 이 책에 관심을 두거나 아이의 머리 크기 정도 되는 이 책을 집어 들기에 나나 당신은 너무 어렸을 듯하다. 가정백과사전 얘기다.
가정생활에 관련한 모든 지식과 지침을 담은 가정백과사전은 1970~80년대에 유행했다. 당시 백과사전 붐에 힘입어 가정의학사전과 함께 집마다 한 권쯤 구비해놓아야 하는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에서 백과사전이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초였다. 1973년 3월 19일 자 경향신문의 기사는,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1,000만 원이 넘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비롯한 백과사전 전집이 1960년대 말부터 연평균 약 3,000 세트가 팔렸다고 전한다. 물론 아무나 가질 수는 없었다. 그 틈에 실용성을 기치로 한 가정백과사전이 파고들어 서민들의 삶에 두루 이용되었다. 가정백과는 대개 육아, 교육, 수예, 의복, 체육, 호칭, 생활법률, 실용 옥편, 농가지식, 작명법, 가정공작, 취미, 부부생활, 건강, 미용, 주택, 가정의식 등 수십 개의 챕터와 각 챕터별로 달린 수십 개의 하위 챕터로 이뤄졌다. 정보의 양은 어마어마했다.
교양, 실용, 기술이 혼합된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당시의 생활상을 짐작해볼 수 있다. 삶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소비’와 ‘폐기’라는 행위를 통해서 실천하는 우리에게 가정백과사전 속 세계는 낯설다. 1976년 출간된 한영 컬러판 가정백과사전 속 세상의 사람들은 많은 걸 직접 만들고 고치고 보존한다. 이들은 직접 패턴을 따고, 옷을 짓고, 선반을 제작하고, 전기 기구를 직접 고쳐 쓰고, 안테나를 손수 세운다. 역할의 분화가 엄격하게 이뤄진 현대의 우리가 생산자, 수리자, 구매자, 수거자 등의 역할을 동시에 맡을 수 없는 것에 반해 당시의 사람들은 이 모든 역할을 일상에서 다발적으로 수행했다. 시대가 시대다 보니 해야 할 일도, 배워야 할 것도 많았을 것이다. 근대화의 물결이 보통 사람의 삶에도 스미기 시작했을 그 무렵, 삶 전반에서 벌어지는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으려면 한사코 바삐 움직이며 보폭을 빠르게 넓혔어야 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