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il of Tales 동화 꼬리잡기

그래, 우리 함께

에디터 전지윤
자료제공 BARN

“언니, 나도 죽으면 어떡하지?”
팬데믹이 전 세계를 공포와 혼란으로 뒤덮은 시기, 영국에서 의사로 일하며 매일같이 응급실에 밀려드는 코로나19 환자들을 치료하던 사촌 동생이 남긴 문자에 한참을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짐짓 아무렇지 않은 듯 답을 했지만, 뉴스에서 실시간으로 전해오는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의 기하급수적인 증가세는 참담하기만 했다. 지금도 마치 텅 빈 영화 세트장처럼 황량한 일상을 지내고 있지만, 의료진과 공공 방역 인력들의 노고 덕분에 우리는 폭풍 같은 팬데믹 기간을 견뎌올 수 있었다. 최근 여러 나라에서 백신 접종이 이루어지기 시작하면서 완전한 회복을 기대할 수 있게 된 것은 분명 긍정적인 소식이다. 그러나 가난한 나라들의 백신 확보 여부는 요원하고 경제적, 사회적, 정서적 어려움에 부닥친 이들도 여전히 너무 많다.
어느 날 갑자기 불현듯
“끊임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늘 해야 할 일들이 있었습니다. 생각할 생각마저 할 틈 없는 일상. 그 바쁜 일상의 리듬을 타고 휩쓸려 다녔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일탈을 꿈꾸며 크고 작은 변화를 꾀해보던 때가 있었다. 틈만 나면 여행 계획을 세우고 몸과 마음에 고요와 평화를 부러 주입하던 때. 마찬가지로 권태가 권태인 줄 모르는 어린아이들의 일상도 단조롭다. 하교 후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노는 것은 정해진 시간에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일이고, 그 마저도 각자의 방과 후 일정에 맞춰 집으로, 학원으로 갈 길을 떠나기 바쁘다. 작년 음력 설 무렵,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상에 젖어 있는 아이를 위해 잠시 가족여행을 다녀왔을 때만 해도 코로나19를 그저 가벼운 독감 유행처럼 여겼다. 그러나 폭풍은 예고 없이 들이닥쳤다. ‘갑자기’란 말 외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하루아침에 우리 삶은 전혀 다른 국면을 맞이했다. 그 누구 하나 기다리지도, 바라지도 않던 변화였다. 슈퍼 진열대에 쌀, 밀가루 등이 동난 장면이나 생필품을 사기 위해 마트 앞에 길게 줄 선 모습을 보여주는 해외 뉴스들을 접하며 이 비정상적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막막했다. 비록 우리나라에서는 사재기 조짐이 심각하게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또 다른 사회적 문제들이 속출했다.
“하지만 그 해, 폭풍이 오던 날은 달랐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모든 것이 멈추었습니다.
하늘을 뒤덮은 먹구름의 무게가 어둡게 우리를 짓눌렀습니다.”
루크 아담 호커Luke Adam Hawker의 『함께』는 들불처럼 번지는 바이러스의 공습을 갑자기 온 하늘을 뒤덮는 거대한 먹구름과 폭풍에 비유하면서, 한 남자와 그의 반려견의 시선을 통해
급변하는 상황이 야기한 정서적 단절을 보여준다. 바이러스로 인해 희망을 잃어버린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미래를 꿈꿀 수 있을까? 작가는 팬데믹이 야기한 혼란과 절망을 극복할 희망의 불씨를 인간성에서 찾는다. 우리는 사회적 격리로 인한 고독감과 지루함, 허탈감을 쉽게 해결하는 방법으로 가장 먼저 약자에 대한 배려를 포기했다. 이러한 자기중심주의와 약자에 대한 무관심은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되어간다는 징표다. 그러나 이 책은 사람과 환경을 경시한 채 불평등에 직면한 지금의 위기 상황이 오히려 가장 중요한 변화의 순간이라고 강조한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인간의 존재, 자연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놓쳐버린 시간 속에도 계절이 오고 갔다고 합니다.
(…)
비바람이 잦아들었습니다.
구름이 가벼워지더니
마침내 따스한 햇살이 스며들었습니다.”

펜으로 그린 세상
작가이자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루크 아담 호커는 SNS를 중심으로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잉크아트Ink Art 분야의 가장 대표적인 아티스트 중 한 명이다. 오로지 검은 잉크와 다양한 두께의 펜으로 작업하며 복잡한 디테일을 치밀하게 묘사하는 세밀화 작업을 주로 한다. 그는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물이나 건축적 구조를 형상화하는 작업을 즐긴다. 그의 작품에서 미국과 영국의 유명한 건축물들을 많이 볼 수 있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특히 런던을 건축적으로 매우 훌륭한 도시로 꼽기 때문인지 호커의 작품에는 유독 런던의 아름다움이 잘 드러난다.
루크 아담 호커는 자신의 책 『함께』를 53개의 이야기로 구성하고, 편집자인 마리안 레이드로Marianne Ladelaw와 언택트 회의를 거듭하여 구체적인 살을 붙였다. 그의 기존 작품에서처럼 건축물을 치밀하고 정교하게 표현할 뿐만 아니라 인물들의 시선과 복잡미묘한 감정을 때로는 은근하게, 때로는 극적으로 표현했다. 선의 강약, 빠르기, 겹치기, 방향 등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그의 펜 끝은 특유의 감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순식간에 세상을 덮친 먹구름은 마치 거대한 흙더미가 도시를 통째로 삼켜버린 듯하고, 마침내 이것이 턱밑까지 밀려왔을 때는 먹구름은 책을 보는 이의 숨까지 턱 막히게 만든다. 아무도 없는 적막함 속 검은 그림자는 더욱 고독하게 느껴지고, 갑자기 변해버린 세상은 한없이 어둡기만 하다. 이 착잡한 상황 속에서 주인공은 불안한 마음의 구멍을 채우기 위해 비상식적인 행동을 일삼지만, 그 구멍은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무거운 숨을 내뱉고, 창밖을 내다보며 묵직한 단절감을 느끼는 것뿐이다.
그러다 문득 창 너머의 이웃들과 눈이 마주치고, 사람들은 용기를 내어 하나둘 발코니로 나온다. 하늘은 여전히 무거운 먹구름에 가려져 있고, 비인지 눈물인지 모를 선으로 그려진 세상은 꼭 골풀이 흔들리는 것 같지만, 이내 그 위로 밝고 힘찬 태양이 모습을 드러낸다. 자기연민에 빠져 있던 사람들은 그제서야 비로소 타인에게 눈을 돌리고, 인간보다 더 오랜 세월 동안 숱한 고난을 견뎌왔을 자연에게도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아직 호커가 그려낸 세상처럼 먹구름이 걷히고 따스한 햇살이 감싸는 세상에 살고 있지 않다. 가족, 친지, 친구들과 만나 사랑과 기쁨의 포옹을 나누거나 놀이터에서 마음껏 뛰어노는 아이들을 볼 수도 없다. 재난과도 같은 현실속에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 호커는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지점을 진중하게 제시한다. 그리고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님을, 서로가 힘을 합친다면 그 어떤 먹구름도 걷어낼 만큼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전례 없는 위기야말로 다른 한편으로 인류가 서로의 차이점을 극복하고 화합과 상생이라는 길을 함께 모색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까?
“달라진 오늘로 내일을 봅니다.
그날처럼,
폭풍이 다시 먹구름을 이끌고 온다면
설령 그렇다 해도 이제 두렵지 않고 이겨낼 수 있으리.”

April21_TailofTales_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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