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 인터뷰
교정의 숙수가 들려주는 우리말의 맛,
저자 김정선
에디터: 유대란, 사진: 신형덕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는 데 필요한 사람들은 누구누구일까? 작가, 편집자, 인쇄기술자? 이중 교정자를 떠올리는 사람은 아마 많지 않을 듯하다. 그러나 작가나 편집자 못지 않게 책의 완성도에 기여하고 그만큼 많은 문장을 다루고 언어감각이 탁월한 이들이 교정자다. 20년간 수 많은 잡지와 단행본의 문장을 다듬어온 전문교정자가 있다. 『동사의 맛』의 저자 김정선이다. 그가 펴낸 『동사의 맛』은 한 남녀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가는 동안 우리말 동사의 의미와 활용법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해준다. 교정의 숙수에게 우리말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정선: 한글이 과학적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언어가 과학적이라는 말에 저는 의심이 좀 들어요. 언어 자체에 바른 언어라는 게 있을 수 없는 것처럼 과학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게, 언어 규칙을 보면 어떤 것이든 예외가 참 많거든요.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라는 건 사실 기계적이라는 이야기잖아요. 인풋 대비 아웃풋이 있고. 목적이 있고 거기에 맞게 잘 운용된다는 말인데 말이라는 건 그럴 수 없죠. 그 지역에서 쓰는 사람들이 어떤 용도로 쓰게 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거예요. 그리고 한글을 지켜야 된다고 하는 주장에도 저는 어폐가 좀 있는 것 같아요. 말이라고 하는 게 근대화 시기에 가장 폭발적으로 늘어나잖아요. 우리 말은 그 중요한 시기에 일제강점기라는 암흑기를 거쳤어요. 그래서 우리 말을 아끼고 지켜야 하는 측면이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한류 영향도 있고 세계 각 곳에서 한국말을 배워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이제 한글이 우리말, 우리글이라고만 할 수 없는 거죠. 이제는 한국어를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하지 않나 해요.
동사의 경우 한국어의 특성상 동사가 용언으로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동사가 뒤에 와요. 그리고 활용이 워낙 다양하죠. 그래서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고 하잖아요. 동사 못지않게 재미있는 게 부사예요. 예전에는 글에 형용사와 부사를 많이 넣어서 썼어요. 어른들이 말씀하실 때도 그랬고. ‘휘뚜루마뚜루한다’ ‘갈팡질팡하다’ ‘냉큼 이리 와’ 같은 말을 생각해보세요. 요즘은 말할 때도 글을 쓸 때도 부사를 잘 안 써요. 그럴듯하고 무게 있는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더군다나 안 쓰고요. 부사를 쓰기보다는 그냥 명사나 동사를 부사화해서 쓰고 그래요. 써도 이상하게 써요. 부사 뒤에는 조사나 어미를 붙일 수 없는데 자꾸 붙여서 써요. 예를 들면 ‘모두’ ‘서로’ ‘같이’ 이런 건 명사로도 쓰이지만 부사로 쓰일 때도 조사나 어미를 붙이는 거죠. 동사나 조사가 붙는 체언으로 써야 마음이 놓이는 거죠. 부사를 부사 자체로 쓰는 게 뭔가 어설프다는 느낌이 드는 모양이에요. 그런데 한 평론가가 한국말을 정말 잘하는지 보려면 부사 쓰는 걸 봐야 된다고 한 적이 있어요. 실제로 보면 부사를 잘 쓰는 사람들이 글을 잘 쓰고 말도 맛깔스럽게 잘하는 사람들이죠. 형용사와 동사는 행위나 상태를 의미하는 말들이잖아요. 근데 거기에 감칠맛을 더해주는 게 부사예요. 독립적으로 기능을 하면서 형용사나 동사를 수식하는 거니까 더 선명한 색을 가미해주고 분명하게 해주죠. 부사를 자꾸 날려버리는 이유는 글의 개성보다는 전달하려는 바를 얼마나 정확하고 간결하게 표현했느냐를 자꾸 강조하다 보니까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부사를 군더더기처럼 느끼는 거죠. 여건이 된다면 책을 통해 부사도 다뤄보고 싶어요. 이런 책을 먼저 남겨놓으면 뒤에 이 일을 하고자 하는 분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