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터링wintering’이란 추운 계절을 살아낸다는 의미다. 세상으로 부터 거부당하고 발전하는 데 실패하는, 혹은 아웃사이더가 된 듯한 감정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단어기도 하다. 누구나 한 번쯤 이러한 인생의 겨울을 맞이한다. 어떤 이들은 겪고 또 겪는다. 이런 시기를 인생의 휴한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겨울은 갖가지 모습으로 시작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질질 끌어온 인간 관계의 종결, 부모님의 나이 듦에 따라 늘어나는 돌봄의 부담감, 사업의 실패, 세상에서 뒤쳐지는 듯한 감정을 느끼고, 파트너가 다른 누군가와 사랑에 빠져버리면서, 겨울은 급작스럽게, 혹은 천천히 스미듯 찾아올 수도 있다. 혹독한 겨울을 겪고 있을 때 우리는 최대한 문제를 뒤로 미루고 외면하거나 억지로 극복하려 노력한다.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의 저자인 작가 캐서린 메이Katherine May는 이 시기를 무시하거나 없애버리려 하는 시도를 멈추고 실재하는 겨울을 삶 안으로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인생의 겨울을 어떻게 끌어안을 수 있을까? 인생에서 길을 잃은 어떤 이가 용기 내어 떠났던 4,285km의 기록 일지 『와일드』와 『Wanderlust』를 통해 인생의 겨울에 대한 대처법을 살펴보자.
“긴 기다림 끝에 마침내 여행의 출발점에서 막상 이 여정을 시작하려고 하니 내가 지금 하려는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현실적인 깨달음이 몰려들었다. 문득 나는 여기서 멈추고 싶었다. 이 일은 너무 터무니없고 특별한 의미도 없었으며 게다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말도 안 될 정도로 벅찼다. 나는 아직 이 일을 할 준비가 완벽하게 안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여행을 하고 싶다는 간절한 열망이 내 안에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겪어야 할 모든 문제에도 불구하고 낯선 세계의 문을 열고 들어가 예측불허의 도전에 맞닥뜨려지고 싶었다. 거기에는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한 곰이며 방울뱀, 퓨마 같은 야생동물들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발바닥이 갈라지고 물집이 터질 것이다. 온몸은 찢기거나 상처투성이가 될 것이다. 피로는 쌓여만 가고 모든 게 부족할 것이다. 엄청난 추위와 더위가 번갈아가며 나를 괴롭히고 외로움과 고통, 갈증과 허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_셰릴 스트레이드, 『와일드』 중
스페인의 엘 카미노 델 레이El Caminito del Rey, 전설적인 일본의 쿠마노 코도Kumano Kodo, 노르웨이 거인의 땅에 위치한 신화적인 하이킹 경로 등 『Wanderlust』는 세계 곳곳의 매혹적인 트레킹 코스들을 살핀다. 얇은 얼음이 덮인 모래사막이나 해안가의 숲길과 같은 다양한 지형의 하이킹 경로들에서 인간이 얻는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그 길의 끝까지 가 봐야만 알 수 있는, 마지막 순간에 자연스럽게 흘러나올 감동이나 위안이 아닐까? 무엇이 되었든 우리는 광활한 대지 앞에서 한없이 작고 특별할 것 없는 존재임을 여지없이 깨우칠 것이다. 이 길 위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것뿐이다.
“나는 다리가 있는 북쪽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걸어온 남쪽도 쳐다보았다. 나를 가르치고 깨우쳐준 거친 야생의 땅이었다. 그리고 다시 배낭을 메며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방법이 하나뿐이라는
건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사실 언제나 그랬다. 그냥 계속해서 걷는 것뿐.”
_셰릴 스트레이드, 『와일드』 중
책 속 사진들은 놀랍고 경이로운 풍경으로의 여정들을 제시해 독자들로 하여금 당장이라도 대자연 속에 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많은 트레일을 직접 하이킹한 전문가의 세세한 장소 정보와 실용적인 팁은 초보자에게, 상세한 지도는 노련한 트레커에게 유용하다. 매일 반복되는 풍경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도시인 독자들에게는 대리만족을 주기도 한다. 책은 동물의 희미한 발자취와 고대 무역로를 따라 등장하는 산책로 등 각각의 길이 품은 이야기들도 담고 있어 잠들어 있던 모험욕까지 자극한다.
“나는 변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이 그 계획을 세우는 몇 개월 동안 나를 밀어붙이는 힘이 되었다.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예전 모습을 되찾겠다는 것이었다. 강한 의지와 책임감, 맑은 눈을 가진 사람. 의욕이 넘치며 상식을 거스르지 않는 그냥 보통의 좋은 사람. PCT는 나를 그렇게 만들어줄 터였다. 그곳을 걸으면서 내 인생에 대해 전체적으로 다시 생각해볼 참이었다. 인생을 이처럼 우스꽝스럽게 만들어버린 모든 것으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진 채, 내 의지와 힘을 다시 찾을 생각이었다.”_셰릴 스트레이드, 『와일드』 중
아름다운 자연 앞에서 우리는 내면에 집중하게 된다. 거대한 절벽 앞에 펼쳐진 하늘을 카메라에 다 담을 수도 없어 그저 마음만 한가득 벅차오른다. 끝없이 변화하는 풍광을 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괜찮다. 이 장소
에, 지금 서 있다. 여기에 있었던 나는 또 어떤곳을 지나치게 될까? 무엇이든 좋다. 인생이란 얼마나 예측불허의 것인가. 그러니 흘러가는 대로, 그냥 내버려둘 수밖에.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괜찮다고 느끼는 순간이 온다면 우주도 곧 나의 것이 되겠지. 어쩌면 그것이 방랑의 궁극적인 목적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