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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2021
고전(苦戰)하고 있을 땐 고전(古典)
글.전지윤
박학다식을 추구했지만 잡학다식이 되어가는 중. 도서관의 장서를 다 읽고 싶다는 투지에 불탔던 어린이. 아직도 다 읽으려면 갈 길이 멀다.
연애와 로맨스에 대한 책들은 주제가 태생적으로 드라마를 동반하기 때문인지 ‘연애를 잘 하기 위해서는’ ‘연애 따위 필요 없어’ ‘연애가 잘 되니 행복해’ ‘도대체 저건 무슨 심리’ 등 내용이 상당히 극적이다. 그럼에도 풋풋한 젊은이들의 연애 이야기는 불혹의 40대에게 ‘그땐 그랬지’ 하며 향긋한 행복감을 선사해주곤 한다. 지금 되돌아보면 과거의 나에게 이별이 커다란 아픔이었을지라도 그때만 누릴 수 있는 인생의 특별한 쓴맛을 한 번쯤 맛보는 것도 괜찮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난 일들을 떠올리다보니 그 생각이 인생 전체에까지 다다랐다. 90년대에 대학을 다니고 엄중한 외환위기의 시절에 유학을 가서 대학원을 다니고 학위를 받았다. 남들과 마찬가지로 성공한 커리어에 대한 열망을 품고 직장을 다니며 20대를 보냈다. 그러던 중에 연애도 하고 결혼도 했다. 30대에는 임신과 출산을 했고, 그 뒤로는 아이를 키우며 일을 하다보니 그 어느 때보다도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버렸다. 그러다 고개를 드니 마흔하고 몇 년이 지나 있다. 이렇게 살다가는 ‘그냥 매일매일 살았을 뿐인데 어느새 예순 살, 일흔 살이 되었네’ 하는 날이 오겠구나 싶다.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도 없는데 그때가 되면 얼마나 아쉽고 안타깝겠나. 그렇기에 나는 내 삶이 나름 가치로운 삶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그대의 행운의 별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누구에게나 그 별이 있다. 불행은 자신의 별을 알지 못하기에 찾아온다.”_발타사르 그라시안
『내 곁에서 내 삶을 받쳐 주는 것들』은 17세기 스페인의 성직자이자 작가인 발타사르 그라시안의 문장을 인용하며 시작한다.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엮은 그라시안의 잠언집 『세상을 보는 지혜』에서 그라시안은 인생에 불행한 때가 있듯이 행운이 오는 때도 있다고 했다. 아름다움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 것처럼 어떤 일이건 일종의 주기가 있다는 뜻이다. 이렇듯 행운과 불운은 모든 사람에게 오고 가기 마련이지만, 그 시절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개인에게 달려있다. 저자는 책을 시작하며 “영원히 살 것처럼 오늘을 꿈꾸고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아라”라고 말한다. 정신을 집중하고 긍정적 기분을 유지한 채 빛나는 행운의 별을 쥐고 있는 사람, 즉 준비 되어 있는 사람만이 행운의 주기를 놓치지 않을 수 있다고 말이다. 다가올 것에 준비된 삶이란 즐거우면서도 치열하게 사는 삶이 아닐까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살면서 맞닥뜨리는 많은 질문들, 이를테면 자기 삶을 지탱하는 것들은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 수 있으며 왜 살아야 하는지, 심지어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그는 고전문학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 교사 송재환은 그의 책 『초등 고전읽기 혁명』에서 어떤 상황에서건 흔들림 없이 제 기량을 펼쳐 나갈 수 있게 하는 핵심 역량은 ‘탄탄한 기본기’이며, 이 기본을 쌓는 토양이자 양분은 다름 아닌 고전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아이들과 함께 고전을 읽는 동안 사교육에 지치고 스트레스에 찌들어 있던 아이들의 눈빛이 살아나고, 친구를 배려하거나 꿈을 품게 되는 놀라운 변화를 목격했다고 전한다. 이토록 놀라운 고전의 힘은 어른에게도 빛을 발한다. 어른들에게도 고전은 삶의 자양분이자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 가끔은 따뜻한 위로와 포근한 손길이 되어준다.
저자는 두껍고 어려워서 대부분의 독자들이 손도 못 대봤을 고전만 다루지 않는다. 우리가 이미 읽어봤음직한 책 또한 저자만의 해석과 시각으로 새로이 관심을 환기시킨다. 다양한 참고문헌을 적절히 발췌, 인용한 저자의 역량이 빛을 발한 덕분일테다. 이렇듯 다양한 해석과 독서 경험을 낳는 것은 그의 말마따나 고전문학이 가진 원천적인 힘이다. 인생의 한 단면인 연애에 관해서도 고전은 분명 여러 지혜를 담고 있다. 달콤하고도 쓰디쓴 로맨스를 통과하는 와중에 조용히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면, 고전에 도전해보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