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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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017

경험으로부터의 시각

Editor. 김지영

정도를 막론하면 일주일 중 나흘은 술과 함께한다.
술이란 말을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행복해진다.
가끔 내 주업이 에디터인지 프로알코올러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동화 넘어 인문학』 조정현 지음
을유문화사

문학을 이해하는 데 개인의 삶이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그래서 한 작품을 읽으면 시간의 간격을 두고 여러 번 읽는 편이다. 이것을 아주 어릴 적 동화를 읽을 때부터 이어왔는데, 성인이 된 후에는 동화를 다시 읽는 간격이 유독 짧아졌다. 매일 새로운 경험을 하고 매시간 깨닫는 게 있어 세상을 보는 시각이 좀 더 넓어졌기에, 그전엔 미처 깨닫지 못한 동화 속 의미를 찾아내고 싶은 까닭이다. 『동화 넘어 인문학』은 동화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고자 한 내 욕심을 충족시킨 책이다. 지금까지 내려오는 이야기를 찬찬히 살피며 인문학에 대입하는 저자 나름의 방식이 마음에 든다.
구전으로 이어 내려온 전래동화는 그 시대의 흐름에 따라 필요에 의해 각색된 터라 생각할 거리가 많다. 특히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여서 그런지 주제가 인과응보, 권선징악인 경우가 잦아 그 안에 숨어있는 의미를 파악하거나 부조리한 부분을 잡아내기에 더욱 적당하다. 아마 어릴 때 한 번쯤 『은혜 갚은 까치』 이야기를 들어봤을 거다. 이 구전동화는 등장하는 동물에 따라 ‘꿩의 보은’ ‘치악산 유래담’ ‘은혜 갚은 까치’ 등 전국적으로 불리는 제목이 다 다르지만 서사적 흐름은 유사하다. 어느 날 구렁이에게 잡아먹힐 뻔한 까치를 구해준 선비는 그 구렁이의 아내에게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한다. 종이 울리면 죽이지 않겠다는 구렁이 아내의 말에 생사를 오가던 선비는 동이 트기 직전 멀리서 들리는 종소리를 듣는다. 구렁이가 사라지자 선비는 헐레벌떡 종이 있는 곳까지 뛰어간다. 그런데 그곳에서 선비는 죽은 까치를 발견하고, 그제야 까치가 자신을 살리기 위해 온몸을 날려 종을 쳤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흥부와 놀부』 역시 마찬가지다. 심성이 착한 흥부에게는 ‘대박’을, 욕심 많고 못된 놀부에게는 ‘쪽박’을 준 제비의 이야기도 권선징악, 인과응보의 적절한 예다. 이 두 이야기는 하나같이 은혜를 갚거나 복수를 하는 이야기다. 은혜를 갚는 방식은 단순하다. 생명을 구해 주거나 은혜를 베푼 이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데 그친다. 특히 『은혜 갚은 까치』의 경우 까치가 은혜를 갚는 방식이 좀 섬뜩하다. 까치는 은혜를 갚는답시고 제 온몸을 던져 종을 친다. 머리가 깨지고, 피가 튀고, 날개뼈가 부러지도록 혼신의 힘을 다해 종을 친다. 결국 숨을 거두게 되는 지경에 이르고, 후에 선비가 만신창이가 된 까치의 사체를 발견한다. 짐작건대 아마 까치의 사체를 본 선비의 마음이 편할리 만무했다. 어쨌든 생명을 앗아갔다는 죄책감이 고마움보다 더 컸을 테니까. 『흥부와 놀부』는 한술 더 뜬다. 흥부의 심성을 고려하면, 놀부 형님의 불행을 지켜보면서 흥부는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경험했을 터다. 또, 놀부의 불평과 분노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온갖 스트레스를 받았을 게 분명하다.
은혜는 1:1로 교환하는 것이 아니며 나의 선한 행동이 결국 돌고 돌아 결국 나에게 되돌아온다는 믿음. 그 믿음이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제비는 은혜를 현명하게 갚았다고 볼 수 없다. 은혜를 갚는다는 건 상대방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이지, ‘오는 게 있어야 가는 게 있다’는 식의 방법이어서야 흥부와 선비가 겪은 불행처럼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저자는 역지사지, 남의 처지에서 생각하라는 사자성어를 가져와 상대를 이해하고 관용하는 입장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인간은 본래 자기중심적인 존재라서 약자의 처지에 서 봐야만 상대를 향한 상상력이 열린다는 것이다.
문학은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동화 역시 마찬가지로 누가 보느냐에 따라 그 해석이 달라진다. 지극히 주관적인 시선이기에 모두가 똑같이 해석하는 일은 없다. 그런 면에서 『동화 넘어 인문학』은 동화를 바라보는 관점부터 대입과 생각의 폭을 넓히기 좋은 책이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동화를 두고 펼치는 인문학 역시 어렵지 않다. 굳이 저자처럼 사고하는 건 위험한 일인 건 분명하다. 하지만 해석에는 정답이 없다. 그저 저자의 생각의 흐름을 파악하고 본인의 생각을 깨우치는 것에 목표를 두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