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난한 나라에서 온 가난한 작가일 뿐이에요.” 한 인터뷰에서의 백남준의 말이다. 플럭서스에서 비디오아트, 이후 레이저아트까지 끊임없이 새로운 예술을 찾아 변혁을 꿈꿔온 백남준은 우리에게 참으로 큰 의미를 지닌 예술가가 아닐 수 없다. 미술사와 현대음악을 전공한 백남준은 1960년대 플럭서스 운동의 중심에 있으면서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공연과 전시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아시아에서 온 문화테러리스트’로 불리기도 했던 그는 데뷔작인 ‘존 케이지에 대한 오마주’를 초연하며 공연 중에 바이올린을 부수는 해프닝을 보여주었고, ‘피아노포르테를 위한 습작’에서는 2대의 피아노를 파괴하고 관람객의 넥타이와 셔츠를 잘라내고 머리를 샴푸시키는 격렬한 행동주의 양식을 전개했다. 또 첫 개인전 ‘음악의 전시-전자TV’에서 텔레비전 13대와 피아노 3대, 소음기 등을 배치하고, 이 가운데 피아노 1대가 요제프 보이스에 의해 파괴되는 퍼포먼스를 시행하기도 했다. 이 전시를 시작으로 그는 비디오 아트의 선구적 활동을 전개했다. 그의 작업 방식은 예술 창작에 대한 정의와 표현의 범위를 확대시켰고, 그중 ‘TV 정원’은 수많은 모니터의 사용을 통해 비디오 설치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설치미술의 가능성에 새로운 차원을 더했다. 많은 실험과 도전으로 가득했던 백남준의 활동은 오늘날 전 세계 현대미술 작가들에게 커다란 영향력을 끼쳤다. 1993년, 그가 베니스비엔날레의 독일관 대표 작가로 초대되어 최고 전시관 부문의 그랑프리를 수상했을 때 그의 작품 세계를 힘껏 뒷바라지해주지 못한 우리는 그의 활약을 먼발치에서나마 지켜보며 기뻐했다. 2003년, 백남준의 작품 세계와 예술혼을 기리기 위해 경기도와 경기도문화재단이 미술관을 설립하기로 결정했을 때 전 세계 건축가들의 관심이 여기에 쏠렸고, 430여 명의 건축가들이 참여한 국제 공모전이 열렸다. 그리고 2008년, 경기도 용인시에 백남준아트센터가 공식 개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