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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15
가상현실의 세계로 떠나는 여행
Editor. 신사랑
공상과학소설들은 원칙적으로 현실세계와 세속사들(worldly concerns)로부터 우리를 끄집어내어 낯선 곳으로 데려다 놓는다. 그곳은 또 다른 은하계일수도 있고 미래 버전의 지구의 모습일수도 있다. 이렇게 색다른 환경은 고정관념이나 관습에서 벗어나 좀 더 열린 관점으로 삶과 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우리에게 권유한다. 그리고 우리는 곧 기존의 규칙과 규범만이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모험심이 강한 독자들에게도 공상과학 장르는 좋은 여행처가 될 수 있다. 지구 어느 곳에서도 가볼 수 없는 장소와 기상천외한 일들이 기다리는 세계로 말이다. 또한 공상과학소설은 매우 괜찮은 현실 도피처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꿈 같은 가상현실 속에서 무작정 시간을 보낼 수는 없지만, 잠깐씩 갖게 되는 정신적 휴식은 오히려 고갈된 창조성을 보급해주며 인생에 대한 전망을 밝혀 주기도 한다. 궁극적으로 공상과학이라는 장르는 지적, 도덕적, 사회적, 철학적, 그리고 윤리적 질문들을 탐험해 볼 수 있는 안전한 대체 장소를 제공하고 실제 여행을 다녀온 만큼이나 넓어진 시야를 선물한다. 정신없이 빠르게 지나가는 생활 속에서 여행을 갈 여유도 돈도 없다면, 공상과학소설을 통해 최저 가격으로 최고의 이국적인 여행을 떠나보자.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재미있게 읽었다면, 거기다가 영화 ‘매트릭스’의 팬이라면 『레디 플레이어 원』은 당신을 위한 책임에 틀림없다. 1980~1990년 사이의 비디오게임 마니아이거나 20세기 후반 영미 팝 컬처를 그리워하는 이들에게도 안성맞춤인 책이다. 『레디 플레이어 원』은 2044년 황폐해진 인류 미래에 유행하는 온라인 가상현실 세계인 ‘오아시스(OASIS)’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전형적인 ‘원정기’(quest) 소설이다. ‘오아시스’의 창시자 제임스 홀리데이가 유언으로 자신이 직접 게임 속에 숨겨놓은 일명 ‘부활절 달걀’ 세 개를 제일 먼저 찾는 이에게 자신의 전 재산과 오아시스의 운영권을 물려주겠다는 선언을 하며 책은 시작된다. 홀리데이가 숨겨놓은 ‘부활절 달걀’을 찾기 위해서는 그가 어린 시절 좋아했던 비디오게임, 공상과학소설, 영화 등을 모두 섭렵해야만 알아들을 수 있는 힌트가 주어지고, 실제로 달걀을 찾은 후에도 다음 달걀을 찾기 위한 힌트는 또 다른 오락게임 형태의 레벨을 ‘클리어’ 해야만 얻을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이러한 소설의 전제는 스토리 전개 내내 실제로 80년대에 유행했던 음악, 영화, 소설, 게임 장르들을 추억할 수 있는 즐거운 기회를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2009년 개봉되어 크게 흥행한 일본의 애니메이션 영화 ‘섬머워즈’(SUMMER WARS サマ ウォ ズ)와도 여러 가지 비슷한 상황을 그리고 있지만 『레디 플레이어 원』은 어디까지나 20세기 후반 영미 팝 컬처에 대한 오마주(homage)이기 때문에 ‘섬머워즈’와는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그려지는 이야기를 통해 오히려 과거를 회상할 수 있는 특이한 이 가상현실 소설은 사이버 세계 탐닉에 대한 메시지와 게임 특유의 액션, 스릴 그리고 80년대 문화에 대한 향연이 잘 어우러진 하나의 매끄럽고 기발한 여정기임에 틀림없다.
1960~1970년대 인류의 가장 큰 관심사였던 인간의 우주 탐험은 90년대에 접어들면서 대중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우주는 끔찍한 외계인이 등장하는 영화에서나 거론되는 공상과학 장르의 배경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2010년을 전후로 민영화된 우주여행 프로그램들이 곳곳에서 개발∙추진되고, 우주 탐험은 다시금 우리의 이목을 사로잡고 있다. 실제로도 2012년 설립된 비영리단체 마스원(Mars One)이 추진하고 있는 ‘화성이주계획’ 1차 지원자가 20만 명을 넘어섰고, 영화 ‘그래비티’와 ‘인터스텔라’의 흥행은 대중문화 속에서도 실질적 우주 탐험과 척박한 우주 환경 속에서 살아남는 기술에 대한 흥미를 증폭시켰다. 『화성인(The Martian)』은 불의의 사고로 혼자 화성에 남게 된 화성탐사 대원이 한정된 물자와 식량을 가지고 구출될 때까지 생존의 투쟁을 벌이는 긴박감 넘치는 소설이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완벽한 공감대를 만들어 주는 현실성에 있다. 비록 배경은 화성이고, 아직까지 인류는 다른 행성에 장기적으로 어떠한 목적으로도 정착하지 않은 상태이지만, 환경적인 요소 이외의 스토리 전개는 마치 실제로 일어난 사건의 기록 일지를 읽는 듯하다. 소설 『화성인(The Martian)』은 독창성 강한 스토리와 사실적인 캐릭터, 그리고 흥미 넘치고 정확한 기술적 묘사들로 책을 내려놓을 수 없게 만든다. 마치 로빈슨 크루소와 맥가이버를 합쳐 화성에 떨어트려 놓은 듯한 이 책은, 주인공인 마크 와트니가 생존일기를 녹음한 것과 같은 서술형태로 실감나게 전개된다. 화성 표류 1일부터 구출되기까지 550여 일의 여정을 한 발 한 발 단계적으로 읽어나가면서 독자들은 어느새주인공 마크 앞에 닥친 문제들을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 나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한번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내려놓을 수 없는 이 책을 읽으려면 아예 하루 정도 시간을 따로 낼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소설의 제목인 『레드셔츠』는 사실 공상과학 장르에서는 유명한 클리셰(Cliché)로,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 미국 문화의 한 축을 지배하고 있는 TV 시리즈 ‘스타 트렉’ 에서 주인공들(푸른 셔츠를 입은 고위직 승무원들)과 함께 원정에 나섰다가 죽어버리는 엑스트라를 일컫는 말이다. —서문 중
다양하고 기발한 공상과학소설들로 영미 팬들에게 독보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존 스칼지에게 드디어 휴고상을 거머쥐게 해준 소설이 바로 『레드셔츠』다. (그는 『레드셔츠』 이전에 네 번이나 다른 책들로 휴고상 장편부문 후보로 올랐었다.) 이 책의 서막은 클리셰인 ‘레드셔츠’를 상징하는 누군가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죽음이 알 수 없는 더커다란 이야기를 위해 필요한 희생이었음을 깨닫는 장면이다. 주인공인 앤드류 달 소위는 우주연맹 함대 인트레피드호로 배속되자마자 자신이 속한 이 함대에서 알 수 없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달 소위가 느낀 알 수 없는 불안감은 바로 달과 그의 친구들이 인트레피드호의 ‘레드셔츠’ 역할을 맡은 엑스트라들이라는것. 이러한 자신들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 이들은 필사적으로 현재와 과거, 픽션과 현실을 오가며 생존 싸움을 벌인다.이 책은 스칼지 특유의 위트 넘치는 대화 전개와 유쾌한 캐릭터들이 가득하지만, 가벼운 듯 보이는 전재 뒤에는 존재론적 고민과 생존에 대한 욕망이라는 심도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신들이 가상현실의 등장인물, 그것도 엑스트라인 것을 알게 되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공상과학 장르를 벗어나 실제 우리 현실의 모든 ‘엑스트라’들에 대한 이야기로 씁쓸한 잉여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과 공감대를 형성한다. 『레드셔츠』는 빠른 전개로 끝나는 본문이 다소 아쉬울 수도 있지만 뒤에 ‘코다’라는 세 개의 외전편이 실려 있어 캐릭터들의 다른 모습도 즐길 수 있게 구성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