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d but New: 오래된 그러나 새로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에디터:유대란, 사진:신형덕
초등학생 때였다. 기차역 매대에서 신문을 사는 아버지에게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사달라고 조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기차 안에서 단숨에 읽어버렸다. 충격이었다. ‘고등학생의 세계란 이런 것인가?’ 책 속에 묘사된 입시 지옥이 초딩으로서는 믿기 힘들었다. 얼마 안 지나 사촌들과 강시 시리즈를 빌리러 비디오 가게에 갔다가 동명의 영화를 빌려 봤다. 그리고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 이번엔 다른 이유에서였다. 이미연이 너무 예뻐서. 그런 이미연이 죽는 장면에서 우리 모두 울었다. 평소 과묵한 친척 오빠마저도. 오빠는 감정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전형적인 고2 남학생이었다.
영화 속 이미연이 연기했던 은주도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공부를 잘하는 그녀는 평소 1등을 놓치지 않는데 한번은 반에서 3등, 전교 17등을 한다. 성적표가 나온 날 은주는 부모님의 면박을 못 견디고 자살한다. 은주를 짝사랑하던 봉구(김보성)는 교정을 도는 영구차를 세우고, 은주가 좋아했던 노래가 담긴 카세트테이프를 그녀의 부모에게 건네며 꼭 좀 같이 묻어달라고 부탁한다. 이쯤에선 다들 숨죽이며 울고 있었다.
<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는 1989년 7월 개봉 직후 < 인디애나 존스>와 나란히 연일 매진을 기록했다. 교사 출신인 김성홍 작가가 시나리오를 쓰고, 당시 신인이었던 강우석 감독이 연출했다. 같은 해 임정진 작가가 소설화해서 인기를 얻었다. 이 이야기는 1986년, 공부만을 강요하는 삶에 못 이겨 세상을 등진 여중생의 사연을 바탕으로 쓰였다. 그의 유서에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고 적혀 있었다고 전해진다. 살아 있었다면 영화가 나온 해 고3이 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