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아침 6시. 아직 빛이 스며들지 못한 새까만 시각. 휴대폰 알람을 끄고 몸을 반쯤 일으킨 채 정신을 차려보려 애쓴다. 슬리퍼에 발을 꿰어 넣고 끙 소리를 내며 일어난다. 화장실에 들렀다가 부엌에서 물을 한 잔 따라 천천히 마시며 서재로 간다. 창문을 살짝 열고 책상 조명을 켠 후 의자에 앉아 노트와 펜을 꺼낸다. 날짜를 적고 노트에 무언가를 쓰기 시작한다. 스윽스윽 볼펜이 미끄러지면서 방 안에 웅크리고 있던 검은 고양이 같은 어둠을 몰아낸다. 창 밖 멀리서 차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십여 분쯤 지나 문득 고개를 돌려보면, 검은 고양이 사이로 어슴푸레 푸른 빛이 스며들고 있다. 어느새 기도하는 마음으로 해를 기다리게 된다. 아침의 시작이다.
아침은 어떻게 생겼을까?
구민경 작가의 『아침을 만나고 싶어』는 늘 늦잠을 자느라 아침을 모르고 살아온 주인공 나오가 아침의 행복을 경험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밤에 노는 게 더 좋은 늦잠꾸러기 나오이지만 아침의 정체가 궁금하긴 하다. 텔레비전이나 책에서 해가 떠오르는 장면을 보긴 했어도, 직접 본 적은 한번도 없으니 말이다. 나오는 아침의 대명사인 수탉을 찾아가 묻는다. “아침은 어떤 모습이야?”
당황스러움도 잠시, 수탉은 이내 친절하게 아침에 대해 들 아침은 어떻게 생겼을까? 려준다. 캄캄한 밤이 사라지면 나타나는 시간, 자고 일어난 해님이 빼꼼 고개를 내밀고 인사하는 시간, 눈부신 햇살이 세상을 가득 채우는 시간… 수탉의 아침 묘사가 펼쳐지는 동안, 색연필로 그려진 해돋이 장면이 부드럽고도 장엄하게 펼쳐진다. 짙은 남색과 녹색으로 가라앉아 있던 세상이 점차 나오의 머리카락과 같은 주황색과 노란색으로 물들어간다.
하지만 나오는 실망스럽다. 아침은 뭔가 더 특별한 게 있는줄 알았는데 고작 햇살 이야기가 전부라니! 수탉은 아랑곳 않고 아침의 아름다움과 좋은 점들에 대해 계속 들려준다. 아침에 마시는 신선한 공기, 따뜻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 졸음을 저만치 쫓아내는 힘찬 기지개까지. 자신이 모르는 전혀 다른 세상 이야기에 점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나오의 귀가 쫑긋해진다. 둘째 가라면 서러운 늦잠꾸러기 나오는 과연 아침을 만나볼 수 있을까?
텅 빈 시간을 채우는 방법
내일은 기필코 아침을 만나보겠다고 결심하며 돌아왔지만, 막상 잠들려니 고민이 된다. 하고 싶은 일이 많이 남아 아쉽고, 일찍 일어난다고 진짜 아침을 만날 수 있는 건지 걱정도 된다. 그래도 나오는 수탉과 새끼 손가락 걸고 한 약속을 떠올린다. 할 수 있다고 격려해주고 지지해준 친구의 마음을 외면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평소보다 일찍 잠든 나오는, 다음 날 알람 소리에 맞춰 눈을 뜬다. 그리고 지금껏 몰랐던 아침을 한껏 마주한다. 멀리서 들려오는 수탉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커튼을 활짝 연 채 따뜻한 햇살에 몸을 맡긴다. 상큼한 아침 공기는 마치 차가운 멜론 같다. 나오는 수탉이 선물해준 빈 유리병에 아침 공기를 채운다. 내일 아침 공기는 또 어떨지 한껏 기대하면서.
아침을 만난 나오에게 가장 신나는 일은 하루가 길어졌다는 점이다. 나오의 밤과 아침 풍경은 무척이나 다르다. 밤의 나오는 태블릿 게임을 하고 뒹굴거리거나 누운 채 걱정에 휩싸여 있다. 아침의 나오는 두 손을 머리 위로 번쩍 들고 머리가 휘날리도록 바람을 느끼거나, 혼자 그림을 그린다. 좋아하는 일로 하루의 첫머리를 채우는 나오의 얼굴은 아침 햇살을 닮아 환하게 빛난다.
하루의 총 활동 시간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달라진 건 시간의 밀도다. 밤이 하루의 먼지가 꽉 찬 시간이라면, 아침은 티끌 하나 없이 텅 비어 있는 시간이다. 그 시간 속에서는 모든게 한결 선명해진다. 빛도 더 또렷하게 보이고 소리도 더 또렷하게 들린다. 햇살이나 공기처럼 늘 곁에 있어 익숙했던 것들 조차 생경하게 와 닿는다.
수탉이 나오에게 선물한 빈 유리병은 단순히 공기를 채우는 그릇이 아니라 아침을 만나는 마음가짐을 상징한 게 아닐까? 매일 아침 마주하는 새로움으로 마음껏 이 시간을 채워보라는 따뜻한 격려. 그렇게 시작된 하루는 허겁지겁 달려나가며 시작된 하루와는 분명 다를 것이다.
매일 아침 달라지는 공기처럼
나오가 유리병에 담는 아침 공기는 매일 달라진다. 흐린 날과 맑은 날, 비 오는 날과 바람 부는 날, 공기의 맛과 향과 온도가 날마다 하나같이 다르다. 똑같은 아침이 없듯, 똑같이 굴러가는 하루도 없다. 계절마다 매시간마다 모두 다르기에 하루하루가 소중하다는 것을, 나오는 매일 아침 공기를 채집하며 배운다.
나 역시 아침 6시에 시작되는 매일을 맞이하면서 마음 근육을 키운다. 요즘은 해 뜨는 시각이 조금씩 일러지는 것을, 공기에서 얼음조각이 조금씩 빠져나가는 것을 느낀다. 달라지는 건 하루의 시작만이 아니다. 나도 달라진다. 아침 글쓰기가 술술 써지는 날이 있는가 하면 같은 말만 반복하는 날이 있다. 명상에 집중이 잘 되는 날이 있고 잡생각만 떠오르는 날도 있다. 스트레칭 할 때 어깨가 뻣뻣한 날이 있으면 또 어떤 날은 허리가 무겁다. 같은 루틴을 지속하면서도 어제와는 다른 오늘의 나를 발견한다. 이 작지만 위대한 변화를 알아채는 일은 생명력, 즉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끼게 해준다.
인생은 다소 뻔하디 뻔한 나와의 동행이다. 그 와중에 이 세계에서 살아 있다는 감각을 충만하게 느끼게 해줄, 나의 숨결이 깃든 기호들은 무엇이 있나 헤아려본다. 내게는 홀로 차분히 맞이하는 아침이 그렇다. 텅 빈 시간이 주는 자유를 만끽하고 있으면 가슴속에 감사함이 소리 없이 자리한다. 아무런 얽매임 없이 자유롭게 기능하는 스스로를 만나고 싶다면, 아침을 만나보기를 권한다. 기억할 것은 단 두 가지이다. 평소보다 일찍 잠들기, 알람 소리에 저항하지 않기. 커튼을 열어젖히며 활짝 웃고 있는 나오의 표정이 내일 아침 내 표정이 될 수 있다는 믿음만 있다면, 텅 빈 아침은 행복으로 충만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