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ic : 이달의 화제
수 (Number)
에디터 유대란, 박소정
1, 2, 3, 4, … 일, 이, 삼, 사, … 하나, 둘, 셋, 넷, …
어린 시절 수의 이름을 배우고, 그것을 갖고 셈을 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러다가 중학교에 들어가니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응당 숫자나 네모칸이 있어야 할 곳에 x 같은 문자가 들어섰다. 문자는 미지의 수였지만, 방정식이라는 걸 배우고 미지의 수의 정체를 밝힐 수 있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미지의 수는 허수가 되기도 하고 무한대가 되기도 했다. 도형은 구체적인 형태가 변화하더라도 불변성을 지녔다. 추상적인 사고의 시작이었다. 그것은 국어와는 또 다른 언어를 배우는 과정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성’과 ‘셈’을 의미하는 ‘logos’의 다른 뜻은 ‘말’이다.
수는 우리 일상 곳곳에 가장 널리 쓰이는 언어다. 수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아침에 눈을 떠서 출근 시간까지 얼마나 남았고, 아이의 키가 한 달 새 얼마나 자랐는지, 콜레스테롤 수치가 정상인지, 올해는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있다. 우리는 수를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하게 여기지만, 인류가 지금과 같이 수를 표현하게 되기까지는 긴 세월이 걸렸다.
셈을 지시하는 언어나 그것을 기록하는 수단이 있기 훨씬 전, 사람들은 사물의 개수를 알기 위해서 돌을 사용했다. 이를테면 들판에 풀을 뜯으러 갔던 가축이 다 돌아왔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보관하고 있던 조약돌과 하나씩 짝을 맞춰보는 식이었다. 이란의 슈사 지역에서는 그런 용도의 조약돌을 보관하는 데 쓰였던 점토 항아리가 출토되었다. 당시 사람들은 그 조약돌을 일컬어 ‘칼쿨리calculi’라고 불렀으며, 라틴어에서 ‘계산’을 뜻하는 ‘칼쿨러스calculus’가 거기서 유래되었다.
사람들은 물건을 멀리 보낼 때도 작은 주머니에 물건의 수와 꼭 맞는 수의 돌을 넣어 밀봉해서 같이 보냈다. 그리고 물건을 인수하는 사람은 물건 하나에 돌멩이 하나를 짝을 지어 남는 것이 없는지 확인했다. 시간이 흘러 사람들은 돌멩이가 든 주머니들을 구별하기 위해 겉에 표시하는 게 도움이 된다는 걸 알아챘고, 그 표시가 주머니 속의 돌멩이보다 유용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부턴 조약돌도, 항아리도, 주머니도 필요 없었다. 남아 있는 건 수의 ‘관념’이었다. 이런 관념은 양 치는 목동이 어느 날 불쑥 떠올린 것이 아니다. 여기까지 오는 데만 수만 년이 걸렸다. ‘수의 관념’은 도약을 위한 주춧돌이 되었고 사람들은 가장 익숙하고 지천으로 널린 돌멩이나 나뭇가지 등의 모양을 이용해서 이 관념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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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로마의 숫자는 나뭇가지가 발전한 형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알파=1, 베타=2, 오메가=800을 의미했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사용하던 히에로글리프hieroglyph에서는 수를 각기 고유한 그림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무한한 자연수에 일일이 이름을 붙여주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것이 가능해진 것은 ‘없음’이라는 개념이 생겨난 후였다. 우리가 ‘영(0)’이라고 부르는 이 개념은 모래판 위에 놓여 있던 돌멩이가 자리를 떠난 후 새겨진 동그란 형상을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