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내 방을 가지게 되었을 때, 그 방에서 혼자 잠들어야 했던 첫날밤을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누군가 방바닥을 톡톡 치는 소리, 갑자기 쩍 소리를 내는 나무 가구들, 바람에 덜컹거리는 창문과 그 사이를 기웃거리는 기괴한 형체의 그림자들. 나는 혼자 머무는 방에서 이상한 공포를 가지고 살아야 했다. 낮에는 내 세상이자 안식처가 되어 주던 방에 밤마다 무서운 존재들이 찾아왔던 것이다. 이불 밖으로 발이 나와서는 안됐다. 귀신이 내 발을 잡아당길 수도 있으니까. 불을 끄고 침대 밑을 훔쳐봐도 안 된다. 무서운 손이 기다리고 있어 나를 침대 밑으로 끌고 갈 테니까. 이 오싹한 상상이 만들어낸 공포를 모아서 그림책으로 만들어도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누구나 비슷한 상상을 해보았겠지만 각자가 그린 괴물이나 귀신의 정체는 모두 다를 것이다. 그 다양한 존재들을 마주하는 일은 여전히 두렵게 느껴지지만, 숨겨진 것과의 만남은 과연 어떨지 호기심과 궁금증이 일지 않을 수 없다.
마르가리다 파이바Margarida Paiva의 최근 작업들은 동식물과 같은 생명체와 인간 간의 유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식물, 동물 및 장소가 모두 별개의 비물질적 본질을 소유한다는 고대 정령숭배 신앙의 서사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I am the Forest’는 신화적인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미장센을 구성, 연출해 촬영한 뒤 디지털 후처리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완성된 사진은 무 의식에 자연이나 숲이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을 가진 민속 우화나 동화, 고대 신화의 테마를 빌려와 숲과의 개인적인 관계를 말하고 있다. 이 시리즈의 주인공은 스칸디나비아 민속 이야기에 나오는 ‘훌드라Huldra’라 불리는 산중 요괴다. 훌드라는 ‘숨겨진’ 또는 ‘비밀’을 의미하는 숲의 정령으로, 목동들을 유혹해 양으로 만들어 폭포 속으로 사라지게 한다는 전설적인 요정이다. 활자로만 머물며 심상화되던 존재를 파이바는 사진 작업을 통해 형상화시켰다. 상상 속 생물은 장난스럽고 신비롭게 재현되었지만, 실제로 훌드라를 만난다면 결코 장난스럽게 웃어넘기지는 못할 것이다.
모든 사진은 노르웨이의 숲에서 촬영되었다. 숲속에는 수 많은 비밀의 장소가 존재한다. 그러나 오래된 고목에 난 커다란 구멍 안에 무엇이 살고 있는지, 울창한 나무 기둥 사이에 숨어 누군가 우리를 응시하고 있는지 알 수 없고, 또 애써 그러한 틈을 찾거나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 아마도 숲을 지키는 정령이 실제로 존재하는 듯한 기분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숲과 정령은 하나가 되어 사진 속에 기거한다. 상상과 실재를 결합한 사진은 그 어떤 문장보다 신성하고 힘 있으며, 더없이 묘한 기운을 자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