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ic : 이달의 화제

코로나 이후의 세계

에디터 : 전지윤 현희진 박주연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발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올봄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로 아무도 없는 흐드러지게 핀 하얀 벚꽃 길을 지나가며 문득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쓴 『설국』의 첫 문장이 떠올랐다. 지금 인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에 고군분투하며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다. 코로나19는 다시는 되찾을 수 없는 것을 앗아가고, 더는 돌려줄 수 없는 것을 놓고 갔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이 터널 너머엔 분명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시대가 기다리고 있을 터. 코로나 이후의 세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처음 경험하는 21세기 팬데믹을 우리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성찰과 제안들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바이러스 창궐의 시대와 공중보건
“봄이여, 빨리 오시라. 우수 날 아침 확진자가 대거 발생했다는 소식에 마음이 우수(憂愁)한 사람들을 위하여 따뜻한 봄날이여, 빨리 오시라.” (이낙원)

기온이 올라 바이러스의 활동성이 떨어지기를 기대했건만 사스코로나바이러스는 우리를 조롱하듯 고온다습한 한여름의 기온에도 여전히 그 기세가 등등하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은 정례 브리핑에서 “여름철에 코로나19 유행이 감소할 것이란 예측이 맞지 않았다. 결국 사람 간 밀폐된 곳에서 밀접 접촉이 계속 일어나는 한 유행은 지속할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김우주 교수는 “우리보다 더운 나라들에서 4월 중반부터 감염이 증가세를 보이는데, 온도나 습도는 감염병에 있어 보조 변수로서 유행에는 영향력이 크지 않고 기존 감염병의 특성을 대부분 무시하는 코로나19 때문에 감염병 교과서를 다시 써야 할 정도”라고 분석했다.

백신도 약도 없는데 종식될 때까지 숨어있을 수는 없지 않을까? 바이러스의 집단 감염을 통한 집단면역을 갖는 데 있어 세계보건기구와 전문가들은 인류가 집단면역을 가지려면 인구의 60~80%가 면역력을 획득해야 하는데, 다수를 위험에 빠뜨리는 자연항체의 형성을 기다리는 것은 다소 무책임한 접근이란 비판을 받았다. 결국 최선은 백신을 개발하고 지구상 인구 70-75%가 백신을 맞아 항체를 갖는것이다.

“‘의사는 사람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약을 처방하지만, 그 약에 대해서는 아주 조금 알고, 그 질병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더 없고, 사람의 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불과 250년 전 철학자 볼테르가 한 말이다.” (김동은, 『당신이 나의 백신입니다』)

원헬스: 인간-동물-환경의 건강은 하나
코로나19는 어쩌면, 데자뷰déjà vu이다. 아니 또 어쩌면, 프리뷰preview이다. 최근 인간을 스쳐갔던 바이러스 감염병들을 떠올려보자. 주기적으로 찾아와 닭과 인간의 건강을 위협하는 조류독감,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던 사스, 아프리카를 끔찍한 고통과 죽음으로 물들인 에볼라, 대한민국 전체를 마비시켰던 신종플루와 메르스, 그리고 코로나19.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질병들이 특정한 시점에, 특정한 장소에서, 특정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잊을 만하면 나타나고, 과거보다 더 자주 나타난다. 미래에는 더 그럴 것이다. 그러니까 코로나19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우연이 아니라 꾸준히 예견되어 온 인재(人災)라는 것. 같은 행성을 공유하는 다른 생명체들은 무수한 경고를 보내왔고, 인간은 외면의 천재(天才)라는 것.

그렇다면 인간은 앞으로 다가올 또 다른 팬데믹을 그저 손 놓고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단 말인가? 이런 경향을 바꾸거나, 최소한 줄여볼 수는 없을까? 같은 행성을 공유하고 있는 다른 모든 생명체에게 해약을 끼치지 않고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 열쇠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곳에 있다. 인간-동물-환경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 인간의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동물과 생태계의 건강까지 통합 관리해야 한다는, 원헬스One Health이다.

잘못된 사회는 어떻게 감염병을 확산시키나
우주의 빅뱅으로 탄생한 별, 지구, 그리고 인간. 인간이 자기 존재를 확장할 수 있는 최대치의 세계, 그것은 우주.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깊은 내면세계를 유영하다 보면 의식은 어느새 우주로 향한다. 내가 우주이고 우주가 내 안에 있다는 말도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된다. 인간이 모두 별에서 왔다는 천문학자들의 주장을 증명하는 오래된 기억같은 것일까.

천문학자들은 말한다. ‘우리 인간은 모두 별이 남긴 먼지이다.’ 닿을 수 없는 거대한 우주, 그 거대한 법칙 속 우리 인간은 한낱 먼지같이 무력한 존재라고 생각하면 천문학적 지식이 많지 않더라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이 모두 별에서 왔다는 말은 단순히 낭만적인 표현이 아니라 사실을 근거로 한 천문학적 명제이다. 인간을 구성하는 물질은 별의 탄생과 죽음의 과정에서 발생한 수소와 헬륨의 핵융합 반응으로 생성된 별의 원자 쓰레기에서 유래했다. 수소와 헬륨은 빅뱅을 통해 만들어진, 태양계를 구성하는 물질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 뒤를 이어 탄소, 질소, 네온, 실리콘, 황, 칼슘, 철 등이 우주를 채우고 있다. 그중에서도 수소, 탄소, 질소, 산소, 인, 황은 지구상 모든 생명체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여섯 가지 원소이다. 우리 인간의 DNA를 구성하는 주요 원소들은 현재 우리가 존재하는 방식을 완성하는 토대이기도 하다. 원소들이 별 속에서 합성되고 흩뿌리는 과정을 통해 행성이 만들어졌고, 그 행성에서 인류 역시 별과 같은 방식으로 태어난 것이다.

어린 왕자와 웃는 별
2018년 초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보건기구 회의에서 ‘질병X’라는 것이 등장한다. 연구자들의 보고서에 등장한 이 질병은 새로운 병원체가 일으킬 대유행 감염병으로 동물에서 유래된 바이러스일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된다. 여기에는 무분별한 경제 개발로 사람들과 야생 동물이 접촉할 수밖에 없는 어딘가에서 출현할 것이라는 단서가 붙는다. 그리고 마침내, 이 질병X는 코로나19라는 이름으로 2020년 인류의 삶을 잠식해버렸다. 예측되었으나 막지 못했거나 혹은 막지 않았던 바이러스. 백신이 개발되면 우리는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이 위기는 종식될 것인가. 생태학자들의 예측에 따르면 이미 환경은 삼 년에 한 번씩은 전염병이 출현할 수밖에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인간에게 숙명처럼 기다리고 있던 재난 상황의 뿌리를 우리는 뽑아낼 수 있을까.

지난 50년 간 세계화 시대를 지나오며 신자유주의의 바람을 타고 자본주의는 인간보다 돈을 우선하는 가치관을 교묘하게 전파해왔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 여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허술한 의료 시스템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감염자 수를 목격하는 일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경제적 효능이 떨어지는 환자와 노인의 인권은 암묵적으로 짓밟히는 현상. 유럽연합의 경우 긴축 정책을 이유로 노인과 보건의료에 대한 예산을 삭감했고 그 결과 그리스 등 일부 나라들에서 평균 수명이 단축되고 감염병 환자가 대폭 증가했다. 국민의 10%가 의료보험이 없어 검사를 받지도 못한 채 수많은 감염자와 사망자 수치를 갱신하는 미국의 상황은 보면서도 믿기 어렵다. 재정 감축을 통해 응급의료 영역을 축소한 탓에 미국의 인구 1,000명당 병상 수는 한국의 3분의 1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매년 인플루엔자로 수만 명의 사망자가 나오고 있지만 무상 예방접종도 이루어지지 않는 미국 사회, 병원도 못 가는 아픈 사람들이 돌아다니며 병을 퍼뜨리는 통제 불능의 환경과 인공호흡기나 응급 병상 같은 재래식 장비마저 부족한 상황에서 자국민의 안전을 운운하며 바이러스 근원지에 대한 책임 추궁을 따지는 미국 대통령의 행동은 모순적이다. 집단 면역을 내세워 초기 방역 대응에 실패한 영국의 경우 대책 없이 감염될 수밖에 없는 상황임에도 집단 면역을 그대로 시행하는 정책은 생산력이 퇴화된 노인과 병든 자들의 존엄을 외면한 냉혹한 자본주의의 이면이다.

같은 기간 대한민국의 방역 시스템이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미국의 시스템을 따라가는 우리나라가 왜 의료 시스템은 그들과 다르게 선진화되었는가는 흥미로운 지점이다. 1960년대에 의료보험법이 처음 제정될 당시 북한과 경쟁이 심했던 우리 사회는 북한의 진전된 의료 시스템을 기준으로 사회주의적 의료 체계에 뒤쳐지지 않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인간의 생존이 일부 대형 자본가들의 이윤보다 우선시되어야하는 인권의 문제임을 망각한 세계 도처의 자본주의가 낳은 폐해들을 우리는 다행히 따라가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공공의료 시스템은 전체 병원시설 중 10%에 불과하며 이는 평균 73%에 달하는 OECD 국가 중 꼴지인데, 이 상황 역시 모순적이다.

September20_Topic_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