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ic : 이달의 화제
웃음
에디터: 김선주, 박중현
코미디는 오랜 시간 인류에게 비극보다 가볍고 열등한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웃음을 유발하고 진지하지 않다는 이유로 가볍게 취급하기엔 내재한 힘이 너무나도 크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웃을 수 있는 동물”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웃음은 마음을 나타내는 방식이자 인간이라는 사회적 동물의 중요한 본질이다. 웃을 여유도 없을 만큼 바쁘고 삭막한 삶을 살고 있는 지금, 코미디와 웃음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닐까.
사실 코미디의 개념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학자들에 따라 다르게 정의되어 왔고, 현재까지도 연구를 통해 명확하게 확립된 바가 없어 하나의 개념으로 정의하기 어렵다. 독일의 비평가 칼 프리드리히 플뢰겔은 “희극적인 것의 영역은 너무나 광범위하여, 여기에 속하는 말과 개념들은 혼란스러울 정도로 서로 차이가 나며, 희극적인 것과 연관된 의미들은 때때로 모순되어 언어로 유추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그만큼 코미디의 범주는 넓고 해석의 여지가 다양하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코미디의 개념은 16~18세기 이탈리아에서 발달한 ‘코메디아 델라르테commedia dell’arte’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우스꽝스러운 가면과 의상을 걸치고, 일정한 대사 외의 디테일은 진행 상황에 따라 배우가 즉흥적으로 재치를 발휘하는 희극이다. 한국의 탈놀이와도 비슷하다. 이러한 양식은 이후 유럽의 희극에 큰 영향을 끼쳤다. 코미디는 사전적으로는 ‘희극’이라 정의할 수 있는데, 희극comedy이라는 말은 그리스어의 코모디아komodia에서 유래한 것으로, 코모디아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를 받드는 축제에서 술에 취해 행렬하며 노는 것을 가리키는 코모스komos에서 기원했다. 여기서 ‘극’이라는 점에 주목했을 때 곧 코미디가 단순히 일상적인 농담이나 우스갯소리가 아닌 하나의 ‘장르’임을 뜻한다. 코미디와 비슷한 개념인 농담, 우스갯소리, 풍자, 해학, 익살, 슬랩스틱 등은 코미디라는 장르 안에서 웃음을 유발하는 요소이며, 코미디 역시 웃음을 유발하는 형식이지만 곧 웃음과 동의어인 것은 아니다.
프랑스의 윤리학자 라 브뤼에르La Bruyère는 “이 세상은 생각하는 자에게는 희극이요, 느끼는 자에게는 비극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좀더 유명한 말로는 찰리 채플린의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도 있다. 둘 모두 공통으로 가리키는 것은 웃음을 가능케 하는 ‘심리적 거리’다. 웃기 위해서는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어느 정도 거리가 필요하다는 소리다. 또한 웃음이 어떤 대상에 대한 반응이자 타자의 것이라는 점을 환기하는 측면이자, ‘어떤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여유’를 지닌 사람이 정신적으로 성숙하다고 여겨지는 근거기도 하다. 하지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그 ‘거리’의 차이로, 웃음을 유발하는 서사(내용이나 이야기 정도로 이해하자)의 구분이 가능할 정도로 효과와 양상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너와 나의 웃음 거리, 내가 보는 우리 사이?”
‘웃음’은 ‘웃다’의 명사형으로 ‘웃는 일 또는 그런 소리나 표정’을 가리킨다. 동사 ‘웃다’는 ‘기쁘거나 만족스럽거나 우스울 때 얼굴을 활짝 펴거나 소리를 내다’로 정의된다. 하지만 조금 생각해보면 우리는 사전적 정의 그대로 “기쁘거나 만족스럽거나 우스울” 때만 웃진 않는다. 웃음과 관련된 속담과 격언을 살펴보면 단적으로 그 상황들이 드러난다. ‘웃으면 복이 온다’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 등은 물론 긍정적이지만, ‘웃느라 한 말에 초상난다’ ‘웃음 속에 칼이 있다’ ‘마지막에 웃는 자가 가장 잘 웃는 자이다He laughs best who laughs last’와 같은 표현은 의미심장하거나 웃음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또한 말로 정리된 웃음의 종류 또한 굉장히 많다. 한자어로 이루어진 단어만 몇 살펴보아도 미소(微小), 실소(失笑), 폭소(爆笑), 냉소(冷笑), 조소(嘲笑), 고소(苦笑) 등인데, 각각 ‘소리를 내지 않고 빙긋 웃는 웃음’ ‘알지 못하는 새 툭 터져 나오거나 참아야 하는 자리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 ‘여럿이 폭발하는 갑작스러운 웃음’ ‘쌀쌀한 태도로 업신여겨 웃는 웃음’ ‘조롱하는 태도로 웃는 웃음’ ‘쓴웃음’을 가리켜, 그 상황과 효과가 다양함을 보여준다. 웃음이 단지 말초신경을 자극받아 나타나는 기쁨의 반응이 아니라 상황에 대한 인식이자 때로는 목적성을 강하게 띤 의사 표현임을 가리키는 지점이다. 게다가 비언어이면서 태초 이래 모든 인간이 공유하는 신호라는 점에서 인간의 가장 고유한 속성임을 나타내는 듯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