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ic : 이달의 화제
아날로그 감성 Analog emotions
에디터: 박소정, 김선주, 박중현, 김지영
한 눈을 찡그린 채 다른 쪽 눈을 뷰파인더에 갖다 댄다. 그리고 조심스레 빛의 양을 조절하고 초점을 맞추는 과정을 거친 끝에 셔터를 누른다. 터치 한 번이면 고품질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대에 이 무슨 번거로운 일인가 싶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과정 하나하나가 누군가에겐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이자 낭만 그 자체다. 과정이 생략된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에 대한 관심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커지는 관심만큼 아날로그에 관해 깊이 들여다볼 겨를은 없었다. 이에 곁에 있지만 잘 몰랐던 아날로그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1952년 8월 29일 뉴욕주 우드스톡의 한 콘서트홀에서 피아노 연주회가 열렸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인 가운데 연주자는 피아노를 치지 않고 시계를 보며 악장을 넘기고 피아노 뚜껑을 여닫는 일을 반복했다. 그러자 관객석에서 조금씩 웅성거림이 들려오고 급기야 어떤 이들은 화를 내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이는 현대 음악작곡가 존 케이지가 만든 곡 <4’ 33’’>로, 소리에 관한 편견을 깨트린 기이한 퍼포먼스로 오늘날까지 널리 회자되고 있다. 악기의 선율로 이루어진 음악에 익숙한 대중에게 난해한 곡일 수 있지만 이는 아날로그의 본질을 살펴보는 데 흥미로운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만약 연주자가 평소처럼 연주를 시작해 건반을 눌렀다면 나무로 된 작은 망치가 프레임에 고정된 피아노 줄을 때리는, 즉 전형적인 아날로그 방식에 의해 피아노 소리가 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건반을 치지 않았다고 해서 즉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 묵음의 상태라고 말할 수 있을까? (…)
오늘날 경제는 저성장을 거듭하고 있고, 현재 지향적 소비 경향이 보여주듯 개인의 노력으로 더 나은 내일을 확신하기 힘들다. 과거처럼 속도나 성장에 그다지 목맬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과학의 발전 속도 역시 과거에 비해 어느 정도 안정적인 값을 유지하고 있다. 과학적 스펙터클에 익숙해져 되려 둔감하기도 하다. 게다가 (지금도 많이 그렇지만) 미래는 인간에게 재화 외 거의 아무런 것도 요구하지 않을 예정이다. 인간은 여러모로 심심하다. 바쁘지만 심심하다. 공허하다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인간은 새로움을 추구한다. 그런데 디지털에 둘러싸여 살다 보니 오히려 낯설어졌거나 경험할 기회조차 없어 새로운 게 있으니, 바로 아날로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