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hop & the City 세상의 모든 책방
시간을 기록한 상자의 여행
에디터 전지윤
자료제공 시공주니어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던 시절에는 필름을 인화하지 않으면 어떤 사람이 어떤 모습으로 누구와 찍혔는지, 어떤 장소를 언제 어떻게 찍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사진관에 필름을 갖다 맡기고 며칠 뒤 찾으러 가 사진관 문을 열면 시큼하게 풍기는 약품 냄새가 묘하게 설레게 했다. 어떻게 나왔을까. 하다못해 휴대전화에 붙어 있는 카메라 조차 1억 800만 화소로 성능이 좋은데 요즘 필름 카메라를 갖고 다니며 찍는 사람들은 거의 보기 어렵다. 그러나 수십, 수백 장의 사진을 찍는 것이 너무 쉬워져 버린 지금, 아이들은 엄청 무거운 앨범을 꺼내어 머리를 맞대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 여행하는 즐거움을 알지못한다. 오래된 사진 속에는 지금의 나보다 젊은 부모님이 웃음 짓고 있고, 햇볕에 그을린 피부로 동생과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는 앞니 빠진 나를 만날 수도 있다. 그런 시간 여행의 묘미를 모르는 첨단의 세대가 애잔한 것은 나뿐일까.
설날 연휴에 부모님과 우리 세 가족은 따뜻한 나라로 여행을 다녀왔다. 출국 전 공항에서 두꺼운 겨울 외투와 점퍼를 맡긴 뒤 비행기 안에서 여름 샌들로 갈아 신으니 몇 개월쯤 시간을 건너뛴듯했다. 그렇게 해가 뜨겁고 파도가 넘실대는 여름 나라에 오니 어린이는 눈 뜨자마자 강아지처럼 물만 보면 좋아서 폴짝폴짝 뛰고 얼른 달려가 참방참방거렸다. 반짝이는 백사장에는 작은 숨 구멍들이 심심찮게 보이는데, 재빨리 파내다 운이 좋으면 숨어 들었던 작은 게도 찾을 수 있고, 조개껍질, 해초도 쓸려온다. 찰싹거리는 파도 소리에 호흡을 가다듬고 하얀 거품이 부서지는 파도를 보면 설레지 않을 이가 있을까.
“파도타기 할까? 깊지 않으니까 여기까지 와서 파도가 올 때 뛸 준비를 하고 있다가 네 몸 가까이 왔을 때 뛰는 거야!”
그렇게 한참을 까르르 웃으며 신나게 놀다가 파도보다 백사장에 먼저 도착하겠다며 열심히 달려 나가서 이겼다고 싱긋 웃긴 했는데, 되돌아가며 쓸어가는 파도의 힘을 몰랐던 아이가 휘청거리다 넘어지고 말았다. 짠 물이 입에 들어가서 기분이 상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잠시, 깔깔 웃으며 일어난다.
“파도타기,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