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뀌어야 할 부분과 유지할 부분을 구별하기 위해 그동안의 행보를 돌이켜보는 일은 새롭고 중대한 무언가의 제작을 앞둔 모두에게 필수 과정이다. 건축도 마찬가지다. 지속가능성을 생각하는 것은 물론, 방문객 간의 교류와 공간에서의 경험을 설계해 오래도록 유지 가능한 소통 환경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 시민들이 오래도록 기다렸던, 자연과 다양한 시민의 경험 모두를 품은 도서관이 있다. 시민들이 40년간 애용하던 공공 도서관이 철거된 자리에 건립된 새로운 아지트, 바리나 지역 도서관Varina Area Library을 소개한다..
미국 버지니아 주 헨라이코Henrico 카운티의 동부 행정구역 바리나Varina는 유서가 깊은 곳이다. 1607년에 건설된 최초의 영국 영구 식민지 제임스타운에서 약 30km 떨어진 이곳에는 개척자 존 롤프의 담배 농장이 있었다. 그는 담배를 재배하던 이 농장에 스페인산 담배 종자인 베리나스Verinas에서 파생된 ‘바리나’라는 이름을 붙였고, 이는 곧 이 지역의 명칭이 되었다. 오늘날 바리나에는 우거진 수풀과 끝없이 펼쳐지는 농지를 가로지르는 도로가 있는데, 존 롤프와 결혼한 아메리카 원주민 포카혼타스Pocahontas에서 이름을 따왔다. 바리나 지역 도서관은 포카혼타스 도로와 5번 국도가 만나는 지점의 남서쪽 습지 가까이에 자리하고 있다.
건물의 실루엣은 지역 역사와 밀접하게 연관되는 담배 헛간을 연상시킨다. 길이보다 폭이 상대적으로 짧고, 붉은 벽돌과 지역에서 나는 사암을 사용해 멀리서 보면 헛간 세 채가 모여 있는 여느 담배 농장처럼 보인다. 사실 세 채의 헛간은 중간 연결 공간으로 이어진 하나의 건물이다. 도서관이 경사진 땅에 지어진 이유는 이곳 부지가 개발 제한 구역인 습지와 개울가를 향해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기울어진 땅에서도 습지를 바라보는 전망을 최대한 활용한 설계 덕분에 이곳 뒷베란다에서는 보기만 해도 눈의 피로가 풀리는 푸른 습지를 내려다볼 수 있다. 습지 반대편 2층은 지상과 연결되는데, 이곳의 오른쪽 연결 통로에 도서관 입구가 위치한다. 입구로 들어서는 순간 높은 층고가 주는 여유로움과 함께, 정면 유리창 너머 자연 풍경이 시야로 들어온다.
바리나 도서관은 앞면과 뒷면 모두가 천장부터 바닥까지 창문으로 이뤄져 있다. 덕분에 도서관 어디에 있어도 밖을 볼 수 있어, 지붕의 아늑함과 자연의 해방감을 동시에 안겨준다. 이를 가장 만끽할 수 있는 곳은 중앙 건물의 거대한 계단이다. 창건물의 실루엣은 지역 역사와 밀접하게 연관되는 담배 헛간을 연상시킨다. 길이보다 폭이 상대적으로 짧고, 붉은 벽돌과 지역에서 나는 사암을 사용해 멀리서 보면 헛간 세 채가 모문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2층 중간부터 1층까지 연결하는 이 계단을 따라 조성된 공용 공간에서는 습지를 보며 책 한 권을 즐기기 좋고, 종종 유리창 앞으로 스크린을 내려 영상이 상영되거나 강연이 주최되기도 한다. 그 외에 건물 내부는 다양한 목적에 맞게 구획되어 있다. 기본적인 책상이 있는 구역부터 소파와 탁상이 배치된 곳, 넓은 회의실과 활동적인 프로젝트 작업에 적합한 다목적실 공간까지, 혼자 또는 여럿이서 프로젝트에 몰두하거나 책을 읽을 수 있다. 이처럼 다채로운 공간에서는 보드게임 모임, 어른들을 위한 애니메이션 모임, 어린이 동화 읽기 모임, 워드 프로그램 강의 등 이웃 간의 소통과 학습이 나날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지역 도서관에서 방문객들의 환심을 가장 많이 사는 서비스는 아마도 ‘드라이브 업’ 반납과 대여 창구일 것이다. 자동차에 탄 채로 도서관을 지나가다가 도서 반납을 하거나, 인터넷으로 책을 예약해두고 창구에서 대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 평소 도서관을 이용하고 싶었지만 복잡한 이동 동선과 책검색 과정이 어려웠던 사람들은 물론, 도서 대여나 반납을 위해 일부러 시간 내어 방문해야 하는 사람들의 불편함을 줄여주는 서비스다.
바리나 지역 도서관은 주어진 환경의 장점을 최대한 보존하고 활용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건물은 총 부지의 단 20%만 차지하고, 나머지 녹지는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또한 건물은 습지가 자연스럽게 건네는 풍경을 최대한으로 즐기기 좋은 방향으로 설계되었다. 창의적인 공간들로 꾸려진 이곳은 정숙한 분위기에서 공부나 독서만 하는 조용한 곳은 아니다. 다양한 공간에서 밖을 내다보고, 사람들과 소통하고 개인 프로젝트에 몰두 할 수 있는 복합적인 공간이다. 방문객들이 능동적으로, 그리고 활동적으로 공간을 활용하도록 유도함으로써 도서관은 더욱 활발한 사회적 관계들을 만들어낸다. 앞으로 어떤 환경의 변화가 오더라도 이러한 소통 환경은 지속될 것이고, 바리나의 다음 세대들도 헛간에서 독서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바리나 지역 도서관은 오늘도 습지를 내려다보며 시민들을 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