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는 정신이 병을 얻어 우리의 균형을 잃게 하고 발을 헛디디게 하는 것을 말한다. 광기는 우리를 정상에서 가장자리로 밀어버린다. 어디선가 규범은 종적을 감추고 혼돈이 시작된다. 그 규범과 혼돈 사이의 선은 누가 그릴까? 우리의 신체에 점차 AI의 부속품이 끼워질 것을 예상하고 있는 오늘날, 정신병을 앓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우리의 신체가 영생을 살게 되면 우리의 정신 또한 그리 될 수 있을까? 정신은 진정 우리의 본질이자 주인이 맞을까? 이 사회에서 누가 비정상이고 또 누가 정상일까? 우리를 미친 사회로부터 구원해 줄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미친 사람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줄곧 존재해왔다. 의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 예를 들면 고대 이집트 시대에도 정신병 치료를 시도한 사례가 있다. 광기는 악으로부터 비롯한다는 믿음 아래 산 사람의 두개골에 마취도 없이 구멍을 내어 나쁜 영혼을 빠져나가게 하거나 가두고 때리기도 했다. 여러 가지 보장되지 않은 약물 실험부터 손과 발을 꽁꽁 묶어 놓는 끔찍한 행위들이 치료라는 미명으로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정상 범주에 속한 이들은 과연 정상이었을까? 어쩌면 정상인이야말로 너무 깊게 곪아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채 생을 마감하곤 하지 않았을까? 그러한 곪은 비정상들이 정상이라는 가면을 쓰고 사회를 병들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 인간의 정신은 실로 인간이 속한 사회의 수많은 자화상을 수면 위로 띄운다.
판단에서였다. 당시 오랜 시간에 걸쳐 쌓인 정신과 기록을 대중에게 공개하는 것에 대해 적지 않은 저항도 있었다. 환자와 가족들의 수치심이 영향이 컸으며, 당시에도 이러한 자신의 아픈 정신의 역사는 어디까지나 금기시되는 것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정신과 치료 연구 관행에 관한 편견은 사회가 사람들의 건강관리 분야를 조직하는 방식에 지속적인 악영향을 줄 뿐이었다. 자립하고 통합된 개인으로서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와 의미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은 생각보다 매우 많다. 이러한 정신장애가 있는 특정 개인에게 정신병원의 실험과 기록은 큰 영향을 줄 수 있었다.
오랫동안 ‘비정상’이라 판단된 행동은 사회 기관에 의해 당연히 격리되었고, ‘미치광이’로 판단되는 순간 사회로부터 추방당했다. 기슬랭 미술관은 특히 ‘광기’ 또는 ‘정신장애’의 개념이 순전히 의학적인 것만은 아님을 증명하는 데 성공하길 희망한다. 환자들의 정신적 문제 뒤에는 항상 사회적, 문화적, 그리고 이념적 구조가 서 있기 때문이다. 온갖 힘을 사용해 버티는 한 개인이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중심을 잡던 끈을 놓치는 순간 그 뒤에 서 있던 거대한 무게가 그를 짓누르고 만다. 이러한 측면의 접근은 정신질환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극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서양의학의 일부인 정신과가 인간에게 접근하는 방식은 새로 습득한 지식이 사회적 발의로 변환되는 방식에서 얻을 수 있는 통찰력과 그에 따른 문제점을 확실하게 결정한다. 동시에 그 지식은 인간에 대한 우리의 견해를 넓혀 보다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예술은 삶의 필수적인 한 부분이다. 그것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인류와 사회에 우리의 모습을 투영시킨다. 그러한 미덕과 표현력으로 인해 예술은 우리로 하여금 뻔뻔하게도 언제나 아름답고 경외심을 갖게 한다. 일반적으로 현대의 미술관은 전문 아티스트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그러나 독창적인 재능을 가졌음에도 예술을 공부할 기회를 얻지 못했거나 어떤 이유로든 정규미술 과정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의 작품을 수집하고 전시하는 데 초점을 둔 미술관은 거의 없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재료와 기술의 관점으로 볼 때 외롭고 비순응적인 예술가들일 뿐이다. 정신질환자들이 채택하는 주제는 개인적인 것이 대부분이지만, 그들의 작품은 강렬하고 독창적이다. 기슬랭 미술관 컬렉션은 예술적으로 재능 있는 정신질환자와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만든 시각 예술 컬렉션을 시작했다. 자아를 잃었다고 생각하는 환자들의 그림 속에는 너무도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으며 이는 나름의 미와 영리함, 더 나아가서는 풍자까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정상’의 범주에 속한 자들의 언어로 대화할 수 없지만 그림은 그 누구보다 순수하고 훌륭하게 자신을 표현하고 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