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구원하러 온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인간을 안심시킨다. 그를 통해 인간은 죄 사함을 받고 새로운 삶을 얻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쩌면 현실은 그보다 훨씬 잔혹함에도 희망은 마음속에서 무거운 삶을 지탱할 힘을 발휘한다. 2,000여 년 전 이 땅에 나타난 예수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기독교의 신앙대로 인간의 죄 사함을 위해 이 땅에 온 하나님의 아들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이 신의 아들이라 믿는 허풍쟁이였을까? 그것도 아니면 로마가 식민지 삼았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주고자 한 선구자, 로마를 대항해 인간의 권리를 위해 몸소 싸운 사랑의 혁명가였을까?
기원전 1세기, 예수에 관한 많은 문헌이 전해진다. 수많은 문헌은 그를 따랐던 제자들과 그가 행한 기적, 혹은 당시의 상식과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이데올로기의 전파를 기록했다. 그중 신약 성경은 예수를 신으로 믿고 따랐던 제자와 기자들의 시점에서 기록한 문서와 믿음 없는 인간을 벌하는 이야기인 요한계시록을 골라 담았다. 어마어마한 양의 문서 중 가장 신빙성 있다는 것이 종교학자들의 주장이다. 반면 역사학자들이 바라본 예수는 이스라엘 사람뿐 아니라 전 인류에게 사랑을 전파하고자 한 인간이었다. 유대인은 자신들이 하나님이 선택한 특별한 백성이라고 여겼지만, 예수는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 율법을 하나씩 거론하며 반대되는 주장을 펼쳤다.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 받을 것이라” 했다.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고개를 돌려 왼편도 대라” 했다. 또 “누구든지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를 억지로 5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10리를 동행하고, 내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했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tax collector도 이와 같이 아니하느냐”라고 했다. 예수에게 의심을 품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마을에서 간음하던 여자를 끌고 왔다. 모세의 율법을 따르면 여자를 돌로 쳐서 죽여야 하지만 살인하지 말라는 율법에 어긋나니 어떻게 해야 옳냐며 예수를 시험하고자 했다. 예수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라고 했고, 당시 누구도 그 여인에게 돌을 던지지 못하고 자리를 떠났다. 왜 예수는 당시 절대적이던 율법에 대적했을까? 그가 만일 오늘날 인류의 삶을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예수를 역사적 입장에서만 본다면 그는 당시 세상을 사랑으로 변화시키고자 했던 선구자였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이 그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그를 세상에서 가장 고결한 존재이자 신성한 존재로 여긴다. 고결하고 신성하게 여기는 것은 좋지만, 그를 향한 모든 다른 시각을 배제하고 인간이 불결하다고 믿는 것과(과연 그것이 불결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거리를 두며 그를 고정관념과 이기주의, 배타주의로 똘똘 뭉친 매력 없는 꼰대로 만드는 까닭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