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ic : 이달의 화제

인간성

에디터 : 박중현 김선주

“인간이란?” 아마도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질문일 것이다. 지금껏 수많은 학자들이 ‘인간’이라는 존재 하나를 두고 물음을 던져왔지만, 그 답은 인간을 규정하는 관념에 따라 끊임없이 변해왔다. 생물학적으로 인간은 직립 보행하는 영장류 동물이며, 사회학적으로는 생존을 위한 사회적 노동을 하는 본성을 가지고, 철학적으로는 감정과 의지, 사고를 지닌 존재...라는 등등 듣고 있노라면 “그래서 인간이란 도대체 뭐야”라는 말이 울컥 목까지 차오른다. 이쯤 되면 정말 인간을 만든 창조주가 있지 않고서야 답이라는 걸 과연 알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 인간이란 무엇이냐고? 그걸 알고 싶어서 답을 찾지는 못 하더라도 몇 가지 힌트라도 얻어볼 요량으로 이달의 토픽을 준비해보았다. 탐구하려는 것은 “무엇이 인간이게 하는가?” 즉, ‘인간성’이다. 과연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아니면 더 많은 질문만 남게 될까?

인간성과 휴머니즘의 탄생
‘인간성’이란 사전적으로 보통 인간의 본질이나 본성, 사람의 됨됨이를 가리킨다. 그러나 벌써 뭔가 개운치 않은 것에서 느껴지듯 매우 피상적인 설명이다. 왜냐하면 핵심인 그 ‘본질이나 본성, 됨됨이’가 설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령 이러한 접근도 가능하다. 인간의 본성을 이야기할 때 가장 유명하며 대중적인 사상을 떠올려보자. 그렇다. 성선설과 성악설이다. 그렇다면 만약 여기서 성악설에 견지해 ‘인간성’을 이야기한다면, “넌 어쩜 그렇게 인간성이 없니?”라는 질문은 “넌 어쩜 그렇게 못돼처먹질 못했니?”라는 물음으로 교체 가능하다. 환기하려는 것은 한 가지다. 한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는 결국 그 삶이 말해주듯, 인간다움이 무엇이고 인간이란 어떠해야 마땅한지, 즉 ‘인간성’ 역시 결국 당대 사회의 가치관이 규정한다는 것. 인간이라면 마땅히 어때야 하며 심지어 어때야만 (정상) 인간의 범주에 들 수 있는지 준엄한 선(善)으로 고정불변 정해진 게 아니라는 것. 들이미는 잣대는 사회를 지배하는 같은 인간의 논리라는 것. 계급 사회에서는 지배 계급의 견해가 전면에서 ‘인간’을 규정하고, 노예제 사회에서 노예는 마땅히 ‘인간’ 취급을 받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중세 이후 신 중심 사회에 들며 인간의 기준은 ‘신을 믿는가?’라는 물음, 신앙심으로 갈렸다. 그리고 근대 이성과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인간을 인간의 행위와 능력 자체로 파악하고 이를 장려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이 르네상스 시대에 발현한 것이 바로 ‘인간주의Humanism’이다.

역사 속 ‘비정상’의 낙인들, 악마이거나 미쳤거나
왜 이런 끔찍한 일이 공연히 벌어졌을까? 물론 중세의 마녀 사냥은 유일신만이 존재하는 그리스 도교의 이름 아래 “그리스도 교를 지키기 위하여”라는 명목으로 진행된 것이지만, 근대 초 마녀사냥에 대해서 『마녀: 서구 문명은 왜 마녀를 필요로 했는가』의 저자이자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인 역사학자 주경철은 서구 근대성의 형성 방식을 지적한다. 바로 진리에 관해 엄격한 기준을 세우고 이를 어기는 세력을 억압하기 위해 최대한 효율적인 방식을 발명했는데, 그것이 바로 마녀 사냥이라는 것이다. 근대 유럽은 선과 악, 정의와 불의, 신성과 마성 등이 함께 규정된 시기인데, 이를 확립하고 지키기 위해 이로써 설명되지 않는 존재, 즉 마녀가 필요했던 것이다.
광기가 탄생하고 지칭되는 방식은 앞서 ‘마녀’와 비슷하다. 서구적 근대 이성과 합리성은 유일무이하며 완전무결한 보편 사유 방식을 확립해야 했다. 그러므로 이로써 설명되지 않는 타자는 배제해야 이 ‘무결’을 지킬 수 있던 셈이다. 그래야 주체적 ‘인간성’을 드높이며 앞으로 전진할 수 있었다. ‘저들은 한낱 미쳤을 뿐 뭔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17세기 사람들이 광기에 대해 가졌던 믿음이다.

포스트휴먼, 미래의 인간
과학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우리는 인간과 기계의 ‘재범주화’라는 과제에 직면했다. 기계의 지능은 인간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인간의 몸 역시 이미 자연과 인공의 구분이 무의미해졌다. 인간의 신체 기능은 수술이나 약물, 보철 기기 등을 통해 물리적으로 변형되고 강화되며, 심지어는 인간의 정신까지 온라인을 통해 확장된다. 이렇게 첨단 기술로 인한 인간과 기술이 깊이 결합하면서 인간과 기계를 비롯한 사회 전반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할 필요가 제기되면서 등장한 개념이 있으니, 바로 ‘포스트휴머니즘Posthumanism’이다.
‘포스트Post’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포스트휴머니즘은 휴머니즘 이후 혹은 너머의 ‘새로운’ 휴머니즘을 가리킨다. 즉 포스트휴먼은 현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현재의 기준으로는 더 이상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인간 이후의 존재’를 말하며, 그 모습은 물리적 신체가 없는 컴퓨터 안의 정보 형태일 수도 있고, SF 영화 속에 등장하는 초인의 모습일 수도 있다. 포스트휴머니즘은 이렇게 과학기술로 변화된 인간 존재를 탈인간중심주의 관점에서 새롭게 정의하고자 한다. 기존의 전통적인 휴머니즘은 인간이 자연을 초월하고 지배하는 존재라고 보지만, 포스트휴머니즘은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보고 인간중심주의를 고수하는 전통적인 휴머니즘을 비판하며 극복하려는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